제218집: 하늘나라의 소유권 1991년 08월 19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71 Search Speeches

우주 창조의 공통분모" 사'을 축으로 한 쌍쌍제도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동네에 쓰윽 가게 되면 거기의 주체가 있으면 그 주체 앞에 제일가는 대상이 되어 그 주체와 하나 되고 난 후에는 그 주체가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라도 내 품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래, 어디를 가든지 주체 대상 관계를 잘 맺어야 돼요. 술집에 들어가 가지고도 그래요. `어, 기독교인이 술집에 들어가다니? 어이구!' 이러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 들어가면 술집 주인이 주체이고 내가 객체인데, 객체인 내가 술집 주인보다 더 커지게 될 때는 거꾸로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더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더 투입하는 사람이 주인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원칙에 의해서 투입하고 투입해 가지고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찾을 때까지? 사랑의 상대, 사랑의 이상상대가 형성될 때까지. 대응적 세계, 소재적 세계, 즉 환경을 다 만들어 놓고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삼고 이 우주를 창조했는데 전부 다 쌍쌍제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으로 돼 있는데, 이것들이 전부 축을 중심삼고 자기 계급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은 변할 수 없습니다. 다 마찬가지예요, 급이 다르다 뿐이지.

전부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데 어느 생명도 그 원칙적인 원리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랑의 원칙적 기반 밑에서 움직이면 아무리 큰 주체라도 주체가 클 뿐이지, 그 생활권 내에서 축을 중심삼고 평형적 축 존재로서 같이 관리 보존하고 영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윤박사, 무슨 말이야? 윤박사님, 내가 얘기한 거 다시 설명해 봐요.

축을 중심삼고 또 하나의 평형선 축을 연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될 때는 위대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제일 되는 축을 중심삼고…. 광물세계는 급이 낮지만 이것은 낮은 게…. 그 축이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평형선을 통해서 하나의 구형이…. 이것이, 선이 달라지면 축을 깎아먹는 자리에 가니까 전부 다 평형선 축을 중심삼고 운동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포가 그렇게 돼 있다구요. 나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윤박사는 알우? 「모릅니다.」 알아야 그걸 중심삼고 실천하지. 학자들도 그걸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대응적 관계가 저기를 향할 때는 축이 달라져요. 여기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응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본 축에 지장없이 이것은 커 가지고 대응적 세계, 우주적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것을 중심삼고….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체와 대상 관계로서 우주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은 그 사랑의 품에 귀의하고 싶고 기대어 의지하고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도 매일같이 주인이 설탕물을 풀어 주면 다 모이는 것입니다. 동물도 자기들을 사랑하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그 뜰에 와서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집은 개도 지나가다가도 똥을 싸려면 그 집에 가서 똥을 싸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은 흥한다는 거예요. 참새도 그 집에 가서 지저귀고 둥지도 그 집에 가서 튼다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만물은 사랑이 있는, 천운이 깃드는 곳을 알아 가지고 찾아가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체 앞에 대상이 되어 높여 주려고 한다 이거예요.

여러분도 선생님이 오면 가까이 가고 싶지요? 왜? 선생님이 보다 큰 주체가 돼 있으니 대상으로서 주체와 하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소유 판도입니다. 그래서 더 높은 차원, 더 높은 차원을 향해서, 자기 자체의 존재 기반을 전부 다 무시하고 대이동 흡수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권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급의 세포가 고급의 사랑의 세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모든 저급 동물들이 윗 동물한테 먹히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잡아먹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족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영원히 보존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