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지도자의 갈 길 1971년 08월 17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268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필"로 하" 사람

여러분. 밥 얻어먹어 보았어요? 밥을 얻어먹는 데는 할아버지한테 한번 얻어먹어 보자. 기분 좋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이고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도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기분 나쁘게 주는 할아버지한테 밥을 얻어서 맛있게 먹어 봐야 되겠습니다. 밥 가운데 쌀밥도 싫고 조밥도 싫고 보리밥도 싫고 좁쌀 조금 넣고 보리쌀 조금 넣고 만든 시래기죽을 한번 얻어먹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다니는데 쌀밥을 주면 좋겠어요? 기분 나쁘지요. 목적과 틀리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사는 집에 갔더니 그런 죽을 주면 더 기뻐하고 감사하게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를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가 그날의 자기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또 그 시래기죽을 주는 할아버지가 좋게 주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 신수를 보니까 그러지 않을 사람인데 밥은 왜 얻어먹고 다니나? 우리도 못살지만 자네는 더욱 안 됐구만? 하고 투덜투덜하면서 주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배가 고프니 어떻게 하겠소. 한술 주시오’(웃음) 해 가지고 얻어먹어 봐야 돼요. 거기에서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천지를 주름잡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높고 낮은 것을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 말 아녜요? 여러분, 천지를 주름잡고 싶지요? 천지를 주름잡는 것이 하늘땅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냐? 천만에요. 생활에서 천지를 주름잡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좋은 일은 지극히 좋게 생각하고, 나쁜 일은 지극히 나쁘더라도 지극히 좋은 것으로 키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와 비료는 떼어놓고 보면 원수입니다. 비료와 나무는 판이하게 다른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나 비료를 물에 녹여서 흙과 중화시켜 가지고 나무의 뿌리 근처에 뿌려 주면 어떻게 돼요? 흙은 없이 비료만 주면 나무가 죽지요? 그러나 간접적으로 물질과 섞어서 주면 그 몹쓸 것 같은 것이 도리어 복이 되는 거름이 되어 나무가 자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명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고생이니 무슨 어려운 골짜기니 하는 거기에 조화물만 잘 갖다 놓으면 천지에 없는 귀한 동량지재(棟之樑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홀딱 반해 가지고 찾아와서 '네가 없으면 안 되겠다. 내 말을 듣고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자' 하실 겁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만 그렇게 해서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할머니를 통해서도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머니를 만나자. 그리하여 할머니한테 밥을 얻어 어느 왕궁의 왕보다도 더 가치있고 맛있게 먹어 줄 것이니, 밥아 너는 내가 세운 그 탕감조건으로 해서 영원히 영원히 탄식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환영하며 주는 사람의 밥만 얻어먹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얻어먹어 보고 그 다음에는 형님 누나 동생 같은 사람에게 얻어먹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터전 위에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 부모, 자녀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먹고 입고 사는 것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모든 한스러움으로부터 해방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입는 것에 대한 고통길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되며, 사는 데에 있어서의 고통길에서 해방될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먹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입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 사는 것 때문에 뜻길을 못 가겠다고 한다면 하늘의 역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길을 가더라도 나는 한이 없고, 이 이상의 수난길을 가더라도 나는 기쁨으로 가겠습니다. 여기에서 영육을 중심삼고 찾아지는, 혹은 천주에 사무치는 그 가치가 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생애를 통해서 이 길을 가고자 하오니 하늘이여, 막지 마시옵소서' 하면서 기쁨의 길은 피하고 도리어 수난길을 가려는 자세를 가진 아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아들이 이 땅에 있다면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그랬고, 노아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그후 더 내려와 가지고 모세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사상에 있어서 그들보다 내가 깊으면 깊고 높으면 높지 얕고 낮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물을 사랑하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고 만물을 귀하게 여기는 데도 그런 의미에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끔 내 감정을 통해 생활무대에 엉클어지게 해서 한데 묶어 가지고 생사를 걸어 그 터전을 닦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칼을 갈아서 쓸 줄 아는 무사라면, 칼을 차고 다닐 때 아무데에 차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머리 꼭대기에 이고 다녀도 좋고, 발바닥에 신고 다녀도 좋고, 허리에 차고 다녀도 좋고, 지팡이처럼 끌고 다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의 칼집이 찌그러졌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칼을 허리에 차려니 찰 수 있는 허리띠가 없어서 들고 다닌다고 비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그가 가진 칼의 형태가 칼 같지 않다고 해서 비웃지 말라는 거예요. 그가 일단 그 칼을 뽑아들고 나서면 천하가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사탄 세계 앞에 내세워 가지고 한번 써먹고 싶은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