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집: 가야 할 험한 길 1969년 11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3 Search Speeches

영계와 육계의 -한 고개를 타개해야 할 통일교회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영계를 중심삼고 육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땅위에 찾아오는 이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땅 위에서 험한 고개를 넘어 영계와 육계가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전체적인 기준이 아닌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웠다 할진대는 또다시 가정적인 험한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가정에 대한 험한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한 길입니다. 역사과정에 맺힌 모든 곡절은 가정을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정을 찾아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한의 고개와 엉클어진 사연을 밟고, 넘어야 할 험한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가정만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종족을 향해 넘어갈 때에도 험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향하여 넘어갈 때에도 탕감해야 할 험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로 넘어갈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요, 국가에서 세계, 세계에서 천주로 넘어갈 때에도 우리들의 앞에는 언제나 험한 고개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3대시험에서 승리하게 되었을 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민족을 걸고 다시 나타날 것을 얘기하고 떠났습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개인이 스스로 험한 고개를 넘어 승리했다 하더라도 민족을 중심삼고 싸워야 할 고빗길에서 승리하지 못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승리한 그도 패자의 서러움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 탕감노정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험한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습니다. 이 고개를 누가 넘어야 할 것이냐? 이 고개는 그 누가 대신해서 넘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부모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기에 그 부모가 넘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함께 따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전부가 쇠사슬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이 사슬을 끊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끊고 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가 겪어야 할 시련과 고통이 탕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개를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각자가 책임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 이 두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인류에게 남녀의 인연을 중심삼은 탕감의 조건이 제시되었고, 오늘날 30억 인류에게도 이것이 제시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신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즉, 지옥에 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이 험한 고개를 넘어가기를 싫어한 자기들이요, 험한 고개를 회피해 가려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험한 고개를 맞아 자기가 응당 넘어가야 할 필생의 노정으로 알고 그 고개를 넘기 위하여 들인 힘과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넘어가야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그 고개를 넘어 서러운 역사과정을 뚫고 나아가서 하늘과 관계맺고 중간 영계인 낙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낙원에 가 있는 사람들의 배후를 역사과정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 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험한 고개를 많이 넘었느냐가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가정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국가적인 험한 고개를 넘었느냐, 세계적인 고개를 넘었느냐 하는 차이에 따라 천적인 위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적인 험한 고개를 홀로 넘으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간 것은 일생에 있어서 최후의 험한 고개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하여 담판하기를 `내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길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가능한 한계선까지 하나님께서 양보해 주길 바라셨고 그 길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를 바라셨지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는 데는 생명을 내놓고, 즉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갖고 나온 자리였지만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환영하시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천지까지도 부정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할 험한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렇듯 생명을 내놓고 담판지어야 할 사정이 예수님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