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집: 인간의 가치와 천국의 기원 1971년 11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0 Search Speeches

기도

[기 도]

아버님, 세상에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고 하면 고독단신으로 남아지는 것을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의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여 무한히 세계적인 가치의 내용을 제시하며 남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홀로 외로운 자리에 서고자 해도 환경이 그를 외로운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1월 21일, 이달 들어 세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이 찾아오시어서 저희들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옵고,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개개인을 만나시어 일일이 당신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는 뜻이 무엇이며, 인간이 가야 할 책임노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보다 높은 가치의 존재로서 아버지 앞에 접근하려 하는 저희 개체들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체득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아버지를 부르면서 엎드린 이 자리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같이하시길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는 당신이 찾아 나오는 참된 남성이 되어야 하고 참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런 남성과 여성이 일체화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성립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라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그 가정,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거느리는 본래의 사위기대권을 추구하는 것이, 원리가 찾아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시간 저희들이 그 자리와 얼마나 먼 자리에 있는가를 알고 스스로를 비판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이 땅 위의 인간을 찾아오신 것은, 낮고 천한 인간을 슬프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높고 귀하신 하늘의 권한을 무조건 저희들에게 주고 싶어 찾아오신 것을 아옵나이다. 당신이 지존하심에 따라서 저희는 겸손해야 될 것을 이 시간 깨달으며, 당신이 저희를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마음 앞에 저희는 순응의 제물이 되어야 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예수가 그리워하던 신랑 신부의 기준,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는 상대적인 절대권, 그 자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횡적 국가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즉 천국은 남자와 여자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가정으로부터 기원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격의 가치도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내 개체의 마음 가운데 천국이 있게 된다는 것을,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느니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당신이 분부하실 수 있는 내적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저희들에게는 당신의 아들로서 당신의 분부 앞에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자녀의 명분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통일가의 식구들은 서로서로를 위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서도 자기는 못살면서도 다른 식구를 위하겠다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고, 삼십 년이 가고, 사십 년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후손을 통해서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슬픈 역사노정 위에서 덧없이 수고하여 나오셨다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아버지의 집을 떠난 고아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부모가 있는 줄 모르던 이 인류 앞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 이 이상 복된 소식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고이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을 조롱하던 사람은 그때가 되면 그 반대적인 탕감을 받을 것이요, 그들을 편든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남을 위하고, 몰리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편드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이 민족의 미래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이 민족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요. 세계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민족감정을 넘어 인류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그것이 통일사상이옵니다. 이 사상의 모체는, 기원지는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사랑의 원리인 줄 아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화신체로서, 사랑하기 위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통일교단의 발전을 아버지께서 직시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 사랑을 위해서, 그 뜻의 길을 위해서 가는 곳곳마다 하늘이 가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를 위한 것이 아니요, 인간 개개인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요, 그 나라 앞에 보호권을 세워 가지고 우리를 잘살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불철주야 쉬지 않고 시간시간 다짐하면서 가야 할 것이 저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탕자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였지만 그 결과는 비참과, 고독과 생사가 엇갈리는 도상에서 갈 길이 막혀 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처량한 자신을 발견하고, 하늘을 향해 되돌아선 무리들의 모습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된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상처가 심하고 남루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되돌아온 모습은 처량하지만, 부모를 그리워하고 옛날을 추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그 속에서 싹틈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자의 인연을 다시 맺을 수 있는 봄절기가 시작된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좋다구나' 하며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의 평면적인 향락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반드시 기울어진다는 것을, 석양이 되면, 혹은 가을이 되면 어두워지고, 잎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는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갈 길을 확실히 제시하셨사오니,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식구가 그리워 찾아 더듬는 데 있어서 자기의 자식 이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가정은 발전할 것이요, 그 가정에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나, 식구야 어떻게 되든, 교회야 어떻게 되든간에 자기 아들딸만 붙들고 사는 가정에서는 하늘이 떠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 마음에도 탕자된 자신들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각자 나름대로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서쪽을 향하여, 혹은 남쪽, 북쪽을 향하여, 어떤 방면을 따라서든 걷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옵니다. 골짜기에 떨어져 허덕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끝도 방향도 알지 못하는 산정을 향하여 한없이 수고로운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상하의 노정을 더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산중턱을 중심삼고 돌고 도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천태만상의 모습이 세상의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향방을 가려가야 할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명시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보잘것없는 이 자식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제가 가야 할 길, 숙명의 길이 어떤 길인가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갔다가 후회하는 자리에서 죽기를 바라지 않사옵니다. 일선에서, 하늘이 협조하는 자리에서 생명을 다하여 최후를 고하게 되더라도 나라가 해방되고 세계가 해방되는 자리에 나설 그때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 이들을 교육시켜야 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 방향이 중심으로부터 무한히 떨어져 나가는 방향인가, 혹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슬픔의 방향을 거쳐 나가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이 나가는 방향이 틀렸거든 여지없이 돌아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혹은 자기의 방향이 아버님의 방향과 일치된 노정에 있거들랑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달려가고 또 달려가야 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자녀들이 자녀의 이름을 갖추어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존귀하신 어머니의 대상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졌거들랑 아버지, 이제는 이들이 자녀로서 가야 할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부모를 그리워하고, 하늘 부부와 하늘 자녀의 가치를 그리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오늘날 타락한 인간의 후손들에게 그러한 가치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는 그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감사의 인연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절절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돌아가야 할 운명길에 있어서, 이제 개인으로서 가정을 추어 가지고 가정은 종족을,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세계는 천주를, 그 천주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사랑의 곳까지 되돌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역사 속에 있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삼자의 입장에서 직시하게 될 때에, 자기에게 수고로운 과거가 있었으되 그것이 가야할 이 길 알에 아무런 보탬이 못 되었다 할진대는 그 수고로운 역사적인 사실들은 슬픔이요 고통이요, 아버지 앞에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부끄러움의 자극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희들의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활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이 길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큰 것이옵니다. 과거의 삼십 년, 사십 년의 생애노정에서 뜻과 더불어 태어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자라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살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사랑의 표적으로서 죽는 시간까지 팔 다리를 움직여 가지고 자기가 아는 만큼 민족을 대신하여 외쳐야 되겠습니다. 세계 인류를 붙들고 통곡을 하며 하소연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현재 내가 처하여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늘이 기뻐하는 자리인가, 인간으로서 슬퍼하는 자리인가, 혹은 나 자신이 슬퍼하고 있는 자리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슬퍼하는 그런 자리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자리는 하늘이 기뻐함과 동시에 인간들이 기뻐하고 또한 나 자신이 기뻐하는 자리이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기뻐함과 더불어 환경 전체와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위치를 갖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계속되어서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치고, 인류를 사랑하기에 자기 일신을 망각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온갖 충성을 다하면, 하늘이 자기를 대하여 그렇게 충성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보호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천국의 말을, 천국의 소원을, 천국의 욕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곳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늘과 일치된 방향에서 자신의 갈 길을 가기에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은 고독단신이라 해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굶주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혹은 원수와 싸우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 싸움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금후의 움직임 일체를 당신 앞에 맡기고, 오늘 이 시간 천국의 기원과 우리의 가치 기준이 일치되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옵니다. 이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삼대사랑의 인연을 세워야 되겠고, 그것을 전체의 생활적 동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이 이미 알았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결의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을 다하는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방향을 향하여 생명을 던지고 가는 사람이라 할 때. 그는 세상에 있어서 실패자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비참한 것 같으나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고독은 당신의 고독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처량함은 당신의 처량함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온 만물이 동조하는 자리요, 역사의 심정을 더듬고 있는 수많은 인생이 있다 할진대 그 인생들이 동업자의 입장으로서 편되어 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 지금까지 20, 30, 40, 50, 60, 70, 80의 생애노정을 거친 각자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표준하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가치의 결정기준을 어디에 두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현재 저희의 입장이 당신과 대하는 방향에 있어서 직선의 방향이 아니라 180도 다른 방향에 서 있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불러도 들을 수 없고,볼래야 볼 수 없고,갈래야 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하면 이는 얼마나 비참한 무리이겠습니까? 아버님, 그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향하여 얼굴을 돌려야 되겠고, 당신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될 것이 당신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의 생애노정이 아니겠습니까?

아침 해가 떠오르면 미물인 곤충들도 그 빛을 반기고, 어두운 밤 가운데서도 빛이 발하면 그 빛을 따라 모든 곤충들이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만물까지도 빛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아버지, 하늘이 있고 당신이 계신다고 할진대, 어이 저희들의 발걸음은 당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저희들의 시선과 감정은 당신의 마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하온데 그러지 못한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빛을 보고 그것이 빛임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처참한 타락의 후예임을 탄식해야 할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내 손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발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보는 눈과 내 얼굴이 얼마나 선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선이라는 것의 근거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할 때,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중심삼지 않고는 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식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전체의 중심인 것을, 기쁨의 중심이요 소망의 중심이요 생명의 중심인 것을 저희들이 어린 생명을 두고 깨닫게 될 때, 태초에 우리 인간의 선의 중심이 어디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아니요 환경도 아니요 당신이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당신으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선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 가를 저희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진정으로 저희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 자리를 마음으로 무한히 무한히 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앉아서 먹고 말하고 자고 깨고 오고 가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할 때, 그 자리는 천상세계도 아니요, 이 세계를 넘어선 그 어떤 세계도 아닌 줄 아옵니다. 그 자리는 자신의 오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의 세계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자리는 직접적인 대상권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저희들이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하늘의 인연을 가졌기에 아니 올래야 아니 올 수 없는 내적인 충격을 받고 왔사옵니다. 그것은 당신이 같이하신 연고이옵니다. 밤길을 헤치고 준비하여 나서는 남다른 그 걸음은 고독한 것이로되 지극히 고독한 당신의 입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의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밤길을 헤치고 나서는 그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거룩한 제단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게 될 때는, 숫것으로서 바쳐질 수 있는 제물 되기를 그리워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라도 가치적인 것을 중심삼고 바란다 할진대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자가 없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과 인간이 제단을 놓고 엄숙히 대하는 그 자리 위에 바쳐질 수 있는 첫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안식일이 찾아와 그 새벽에 고요히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사연을 아뢸 때 제일 좋은 내용을 가지고 아뢰고 싶으나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느끼는 자리가 비록 비참한 자리일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제단 앞에 숙명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죽어야만 될, 희생해야만 될 제물의 모습으로서 오늘도 바쳐지고, 내일도 바쳐지고, 일년도 바쳐지고, 생애도 다 바쳐질 수 있다 할진대는, 심각한 제사장의 손길 앞에 있는 제물이라 할진대는, 그 제물이 거동하는 자리에는 당신의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제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전체는 당신의 심정을 반영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대상이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든 찾아 주시옵소서. 그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자기 생명의 가치를 거기에 다 투입시키고,전체의 가치를 거기에 집결시켜 당신 앞에 한꺼번에 바쳐 드리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당신의 심정 세계로부터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언제까지고 당신이 지켜 주시는 아들딸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을 사랑하십니까? 교단을 사랑하기 전에 가정을 사랑 해야 될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단 가운데 사랑하는 가정이 있사옵니까? 그런 가정이 있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립고 또 그리워 아니 만날 수 없고, 아니 찾아올 수 없는 그런 아들과 딸이 이곳에 있다 할진대는, 이곳이 사막과 같이 고독한 자리라 할지라도 이곳은 황무지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이 모든 창조물의 주체의 자리에 계시고 모든 실권의 주체이시며 행.불 행의 요인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아무리 초라하다 하더라도 초라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온유한 마음 가운데 그려지는 말씀을 통하여 부르시는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을 그리워하는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손을 내밀어 저희들을 더듬어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모습과, 그 부드러운 감촉을 그리워해야 되겠사옵니다. 언제 그런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느냐고 하게 될 때, 그런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요, 그런 내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천년 한, 만년 한을 품고 그러한 자리를 추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를 알지 못할진댄 무한히 외로운 고아요, 무한히 고독한 사람이요, 비참한 죽음길에 선 사람인 것을 깨닫고 내 몸이 여위더라도 그 자리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다가 죽게 되더라도 그 무덤 앞에 하늘을 그리워하다 죽은 사람이라는 비석이 라도 세우게 될 때,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제단 앞에 부복할 수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불초한 몸들을 가누어 후하신 당신의 은사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아침에 아버지 앞에 찾아온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타락의 후예 된 이 원한으로부터 이를 악물고 벗어나야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희생을 천번 만번 치르고, 수없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이름과 더불어, 최후의 음성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에 처하여 있는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있습니까?'나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 하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세상의 권위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도 싫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외적인, 물질적인 요인을 갖추었다는 사람도 싫습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호화찬란한 입장에 있더라도 당신의 마음의 그리움이 저희들에게서 사라지고, 당신의 자비와 동정이 저희의 환경에 없다 할진대는, 이곳은 사막 중의 사막이요, 저희는 고독한 사람 중의 고독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찾아오시옵소서.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든 이 자리를 지키시옵소서. 아버지, 1971년도도 이제 40일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가고 오는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옵니다. 남겨야 할 뜻도 이 덧없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산을 바라보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알고, 흐르는 물을 보고도 혹은 물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뜻을 그리워 그리워하며 허덕이고 사는 당신의 아들딸을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서 찾다가 못 찾고, 배척받고 있는 무리인 통일교단에 와서 찾을 수 있다면,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이 자리는 당신이 소심(素心)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한스러운 마음이라도 다 풀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당신의 억울함과 슬픔을 저희들을 쳐서라도 풀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가 되면 이 자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그런 자리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몸부림치며 원망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머무를 수 있는 승리의 길을 닦는 데 무슨 일은 없겠느냐면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하는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갈 길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은 당신과 더불어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데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통일가를 이끄시옵소서. 이들이 그리워하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이며, 이들이 그리워하는 세계가 어떠한 세계이옵니까? 저는 아버지 앞에 원하고 있사옵니다. 나라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애를 기울여 지금까지 나왔으나 정성이 부족하여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그리워하던 세계를 바라고 나가다가 쓰러지는 자리에 처하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에 맡기고, 당신의 이끄심에 감사드리며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타락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느낄 줄 아는 통일가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변명을 잘합니다.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반면 하늘을 변호하기 위하여 얼마나 심각하였으며, 하늘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부끄러운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 이 통일가를 지켜 주시옵소서. 세계 도처에 있는 당신의 자녀 들이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만나 가지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를 중심삼고 드높은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역사적 인연을 따라서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땅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통일의 무리들은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또 가야 되겠사옵니다. 끝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자가 되고, 끝까지 영광의 존재로 남아져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사실, 당신의 승리를 찬양하는 그때가 되면 그날을 영광으로 찬양하기에 부끄럽지 않는 모습이 반드시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한 아들은 지금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사명을 완수 해야 할 입장에 있사오니, 그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시키고 당신이 가실 그 길을 닦기 위해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하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남아야 된다는 것을... (녹음이 중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