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결정 기준오늘날 이 악한 환경에서 종교니 선이니 하면시 우리의 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정의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인륜 도덕을 바라보게 될 때, 그 표준을 어디에 세우느냐? 환경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 마음 바탕에 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바탕은 헤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깨끗합니다, 그 바탕이 악하다면 뿌리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나빠져야 될 게 아니예요? 그런데 그 바탕을 헤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뿌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은 본래 선에서 출발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안 그래요? 사람은 본래 선합니다. 선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격완성이라는 표준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 악에서 출발했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의 씨는 본래 나쁜 종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본래 종자는 나쁜 종자가 아닌데, 왜 나쁜 종자가 되었느냐? 여기 수많은 씨,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조상들을 볼 때 오른쪽을 선이라고 하고 왼쪽을 악이라고 한다면 왼쪽과 같이 악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곡절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에게는 곡절이 없습니다. 이것이 달라요. 여러분들도 보게 되면 이 가운데 어느 한가지 부류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고로 선하다는 사람을 보면, 그 선조들이 공적인 면에서 선을 찾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입니다. 즉, 참을 추구하고 선을 추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조상들이 선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자기 조상들이 선을 추구한 기준이 많으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빛이 비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하게 되면 선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상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좋지 못한 자리에 있었다면 좋지 못한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을 찾아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면 선과 악이 결정되는 기준은 무엇이냐? 그것은 공적이냐 사적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저 친구는 좋은 친구다' 하는 말을 예로 들더라도 좋은 친구라는 것은 내가 그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할 때. 그 친구도 나를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어야 좋은 친구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구, 저 녀석은 곤란해' 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고비를 넘어가야 됩니다. 개척해야 됩니다. 개척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땀을 흘려야 되겠지요? 수고를 해야 되겠지요? 비행기 타고 쓱 구경 다니는 것이 개척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개척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니 땀이 나는 것이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선했느냐 악했느냐 하는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되느냐? 여러분의 조상들이 자기를 위해 살았느냐, 나라를 위해 살았느냐, 세계를 위해서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것보다도 가정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주인은 누구냐?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부모 앞에 효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마음대로 해 가지고 효도가 돼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구 마음대로 해야 돼요? 부모 마음대로 해야 됩니다. 가정의 공적인 중심이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 마음대로 해야 된다 이겁니다. 부모 마음대로 따라가는 것은 부모의 마음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공적인 천륜을 아들딸 앞에 인계해줘 가지고 보다 나은 가치의 열매를 거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아무리 살인강도요, 세상에서 지탄받는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게만은 잘되라고 심각한 입장에서 권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에 부모가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인 자신은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자식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 혹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후손들에게 '너만은 이 뜻을 품어 가지고 내가 못다한 책임을 완수해 다오' 하면서 자기의 유업을 상속으로 남겨 유언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 있습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가정과 문중을 중심삼고 볼 때에 어느 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이냐? 문중을 위해 사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문중에는 문중의 책임자가 있습니다. 그 문중의 어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문중의 본을 따라 가정이 순응하여 금후에 선배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모범적인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문중을 책임진 사람과 하나되는 것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보다 더 공적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