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965년 09월 30일, 일본 동경교회 Page #90 Search Speeches

심정의 소유자가 되라

노방전도 때 사랑하는 일본의 형제들은 외칠 것이다. ‘여러분, 통일교회에 오십시오!’라고. 오면 무엇을 하느냐? 일깨운다. 그리하여 잠에서 깨어난 자신인 것을 인정하게 되면 ‘가라’고 한다. 먼 곳으로 가면 된다. 정처도 없이. 선생님은 정말로 명령해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도 3년 정도면 달라진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 끝까지 간다. 하나님이 가고 싶은 곳은 한반도뿐이 아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 스물 네 시간 동안에 지구가 한 바퀴 돈다. 정말로 지구상의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몇 바퀴나 도실까?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지구가 우리를 등에 지고 하루에 한 번씩 돌고 있다. 하나님은 몇회? 십회 가량 돌으실까? 지구가 도는 힘 이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하여 점령한다.

탕감원리, 탕감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좋은 말이다. 어떤 때는 그 조건에 의해 열(+)이 천만도 된다. 탕감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때는 나쁘지만 어느 때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하나님을 탕감으로 세운다’ 그러한 기준이 성립되면서 하나님 자체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 사람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면 ‘그래’라고 하실 수 있는 기준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어 ‘저는 아버지 보다 훌륭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렇게 되겠습니다’ 할 때, ‘무엇을 가지고? ’ 하면 ‘심정으로’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한 통의 편지가 그 사람을 언제든지 점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없어지면, 하루 종일 시간을 소비해서라도 꼭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일치할 수가 없다. 다른 것을 중심으로 하면 그 한계를 초월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을 중심으로 하면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있다. 그러한 비결의 경지가 있으니까, 인간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자, 그런 권내로 전진하자!

여러분은 아침에 태양을 볼 때, ‘오늘은 무엇을 볼까요? 입이 있으면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요. 그러면 여러분을 만든 주인은 무어라고 할까? 바람이 불어도 물어 보십시오. 벌레 소리가 들려와도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가르쳐 준다. 당신이 기뻐하는 그날은 언제이겠는가.

만약 내가 그 자리가 되지 않으면, 소개할 한 사람도 없다. 그러한 한 사람이 머리를 숙여서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 같은 그러한 생활을 한다. 사람의 아름다움이라는 것, 인격의 미는 시(詩)적 경지인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 깊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빨리 그렇게 되어라. 심정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같은 젊은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에는 권위 있는 선생님이 된다. 그러나, 개인으로 있을 때에는 선생님이 아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는 그런 기분은 갖지 않는다. 언제든지 선두에 선다. 언제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는 것보다도 자신이 하는 것이 오히려 믿을 수 있다. 그런 책임을 지고 나간다면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 1억이라고 하는 숫자는 많지 않다. 이 수는 하루에라도 움직일 수 있다. 모든 문명을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진 곳이 많이 있다. 30분 이내에 세계의 정세를 모두 한 곳으로 모은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없다. 현재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상은, 일본에서의 하나님의 걱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때인 것이다. 일본의 노도(怒濤)를 당당히 넘을 수 있기를 선생님은 바란다. 어떠세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예」

생각해 볼 입장에 있다고 하는 것은 아직 한계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을 뜻 한다. 하지 않으려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것으로 좋아.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살아 있다. 책임을 다해야 할 사명이 있다. 할 수 있겠어? 원리의 내용을 어떻게 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영계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영계에 가서 가르친다. 그런 얘기를 한다면 여러분들은 눈이 뒤집힐거야.

지상계(地上界)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의 슬픔을 책임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한다. 결론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해도 하나님의 심정을 모른다고 하면 선생님은 목을 내주겠다. ‘죽어라! 거기에서 눈물을 흘려라!’ 하는 것이다. 잠을 잘 수도 없다. 부끄러워서 먹을 수도 없다. 목적을 다 이루지 않고 먹을 수가 없다. 오늘은 내가 무엇을 했는가? 세계 30억 인간들이 그것을 알게 되면 모두 금식하며 죽어가는 사람들뿐일 것이다.

심정세계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복귀노정은 종으로부터. 종은 주인에게 백번 얻어 맞으면 백번 믿을 수 있다. 천번 얻어 맞으면 천번 믿을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의 심정을 갖고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며, 종의 몸으로 봉사한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