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신앙과 나 1972년 08월 18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311 Search Speeches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 믿음을 가지고 살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기대를 못 합니다. 자식들한테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못할 때는 자식을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사랑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미치지 못했다면 자기 자식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알겠어요? 옛날에는 자식을 잃어버리고 인류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탄패입니다. 하늘을 보게 될 때 하늘은 불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전통을 이어받게 할 것이냐? 자식들이 자는 자리에 가게 되면 눈물에 사무치는 마음을 가지고 '잘 자라. 어서 커라' 하는 겁니다. 그런 맘을 갖고 찾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래야 됩니다. 이제 이 거룩한 하늘의 전통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이냐? 자기의 믿음의 아들 딸이냐, 아니면 자기의 아들딸이냐? 자기의 아들딸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고마운 것은, 우리 통일교회는 가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 앞에 물려주고 양자 앞에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계 앞에 물려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역사적 시대의 누구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시대 이후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양자를 사랑하고 돌아와 가지고 공인을 받고 난 후에야 자기 직계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지금 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뜻을 위해 죽음의 길을 가고, 나는 이렇게 갔는데, 이것을 누구한테 남길 것이냐? 자는 애기의 손을 붙들고 나라를 위하여 그 기도를 해야 됩니다. 나라의 그 누구한테도 사정하지 못한 것을 철모르는 애기를 붙들고 사정해야 되는 입장이니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그런 자리에서 어이하여 하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눈물의 자리인 것입니다. 밤에 잠이 깨더라도 자식들이 누운 것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자야 됩니다. 그 소망을 다짐하고 자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선생님한테 산뜻한 무엇이 느껴져요? 간격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예수님 사이에 간격이 있었던 것과 같이…. 그 간격을 무엇으로 메울 것이냐? 그건 다 하늘의 전통을 중심삼고 메워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우고자 하는 그 전통을 나를 통해서 세우겠다. 당신이 눈물 흘릴 것이 있으면 내가 눈물을 흘리겠다고 해야 됩니다. 땅 위에 하늘의 전통을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나를 보내달라고 해야 합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그러한 사연을 지니고 이 땅 위에 왔다가 그 사연을 소원성취 못 하고 죽어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런 뜻을 협조해야 할 여러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을 못한 입장에서 죽어 간다면 영계에 가서 선생님을 찾을 자신이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선생님과 관계맺었던 과거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선생님이 원리를 찾은 것은 그런 심정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할 이 아들, 아무개가 과거에 수고하신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사나이로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느냐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다 보니 복귀원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찾다 보니 역사적인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또, 섭리적인 역사에 관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나이로서 살다가 죽으면 섭리를 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고 하며, 하나님의 이 세계에 대한 정성된 심정을 알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몸부림쳤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 대한 모든 하나님의 섭리관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신중히 생각합니다. 알고도 무책임할 수 있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알면 행합니다. 선생님에게는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