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식구란 어떠한 것인가 1965년 12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이스라- 민족

그러면 이 선민이 가져야 할 소망은 무엇이어야 했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관과 인생관과 우주관을 이 땅에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관과 인생관과 우주관으로 대치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그러한 입장에서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천년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선의 목적을 연장시켜 다시 악과 더불어 싸워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로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기가 통치해야 할 선의 나라, 선의 민족, 선의 종족, 선의 가정, 선의 개인을 바라보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이 찾으시려던 그 나라와 그 민족과 그 종족과 그 가정, 그리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참다운 식구와 형제들이 있었던가? 여기에서 역사는 다시 새로운 문제로 접어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구원섭리를 이 땅 위에서 완결짓고 간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세워 가지고 4천년 동안 키워 나오실 때, 배반하는 그들을 승리의 터 위에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던가!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맞는 그날부터 그분과 하나 되어서 국가적인 악과 세계적인 악을 물리치고 선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그러한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마음속으로 원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실 때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얼마나 바라셨을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소망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만민을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선민을 세우셨겠습니까? 그렇게도 애써 길러 놓은 이스라엘민족, 4천년의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서 성장해 나온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다니….

누구보다도 그 나라의 주권자들, 누구보다도 그 나라의 사상적인 분야를 책임지고 있던 교법사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모셔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이단자로 몰아 그의 앞길을 막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