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집: 회고와 새출발 1981년 11월 2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71 Search Speeches

6천년을 탕감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20년노정

그만큼 했으면 이제 알았다구요. 그러면 왜 이런 처사를 하느냐? 여러분 보라구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수고한 것은 씨를 심은 것입니다, 씨를. 하나의 씨를 심어서 하나로 썩어졌으면 수확을 못 했을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이젠 20년 세월을 지내 가지고 수확을 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수확을 하는 데는 어떻게 했느냐? 남자만 수확하지 않았다 이거예요. 남자와 여자를 다 수확했다구요. 1960년도에 어머님과 아버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기원을 뿌린 것이 싹이 터 가지고, 이제는 열매가 맺혀서 하늘을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해서 사랑의 이상의 기점을 향해서 직행할 수 있는 아들딸이, 부부가 생겨났다고 보는 거예요. 기분 좋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종족적인 메시아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부여하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족적인 메시아의 길을 찾아가다가 죽었다 이겁니다. 3년노정에서 2천 년의 한을 남기고 갔습니다. 2천 년의 한을 남기고 갔다구요. 그것을 요셉가정과 사가리아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가인가정과 아벨가정으로 편성했던 기준이, 이 탕개줄이 틀어짐으로 말미암아 12제자와 72문도를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이 84명이 울타리가 못 됨으로 말미암아 비운의 길을 가서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그걸 탕감복귀했다 이거예요. 아담으로부터 노아 야곱시대를 거쳐 2천년사의 탕감을 해야 된다구요. 2천년사의 근본을 탕감해 가지고 예수님시대까지 탕감해야 4천 년의 역사가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 4천 년 역사의 탕감기반 위에 선생님 일대를 중심한 시대에 있어서 20년을 연결해 가지고 6천 년 탕감수를 종결짓기 위한 것이 20년노정입니다. 이 노정은 핍박의 길이요, 눈물의 길이요, 서러움의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리의 노정이 아니예요. 역리의 노정입니다. 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태산준령도 넘어가야 되고, 깊은 바닷물도 서슴지 않고 헤엄을 쳐서 건너가야 되고, 무슨 재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동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산을 넘는데 둘이 붙들거나 업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혼자 가야 돼요, 혼자. 혼자 가는데 입고 가는 것이 아니라 벗고 가는 거예요, 벗고. 빤쯔만 입고 달려야 돼요. 그러려니 가시밭길에 들어선 몸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고, 또 원수가 있게 되면, 독사가 있어서 독사가 물게 되면 즉각적으로 죽음이 초래되는 거예요. 거기에는 중간 개재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달려가야 된다구요.

그것이 개인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고개를 넘고 가정의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돼요. 개인의 고개를 넘게 될 때에는 인류역사에서 개인이 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의 비참하였던 길을 자처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승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갔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마다 해서는 안 되고 그걸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가정을 끌고 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가정을 끌고 대해를 건너가며 파란곡절의 세월을 거치는 겁니다. 그러면서 가정을 끌고 가는 데는 가정을 위하면서 가는 게 아니라 가정을 천대하며 가는 거예요. 이 광야를 지나가야 돼요.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가야 돼요. 사정과 동정을 가지고는 가지 못하는 거예요. 때려 모는 거예요. 거기에는 눈물의 사연이 엮어지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역사를 보면 눈물의 사연이 있습니다. 나타나는 데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숨은 깊은 골짜기에는 비운의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눈물 자국은 사랑의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 자국인 것입니다. 그게 다른 거예요. 만민과 국가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도 침범할 수 없는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흘린 눈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개인과정, 가정과정을 넘어야 된다구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까지도 그러잖아요? 그 엄마 아빠는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적으로 그렇다는 거예요. 36가정, 뭐 축복가정밖에 모르는 선생님이예요. 서울 집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에 가서도 그저 하루 종일 그들을 좋아해 가지고, 그들이 지쳐서 도망가기 전에는 내가 자리를 안 뜨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아벨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 아들을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하지 않고는 사탄이 떨어지지 않고, 사탄세계에서 하늘로 돌아설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예요.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편을 희생시키는 거예요. 원수의 자식을 돌이키기 위해서는 사랑의 눈물 자국을 통해서, 사랑의 희생의 핏줄을 통해서 돌이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 원칙이 없으면…. 사랑하는 아들 딸을 죽이기 좋아하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이런 천리의 원칙을 바로잡기 위해서 비운의 역사를 걸어가야 됨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그 길을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