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인연의 행로 1972년 07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8 Search Speeches

자아부정을 자각하고 남을 위해 살라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반대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과 사람은 주체와 대상 관계로서 하나는 남극이요 하나는 북극과 마찬가지입니다. 남극에서 있는 사람을 보고 남극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북극을 위해 살아라! 북극을 바라보고 살아라' 하는 가르침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를 위해서 죽고자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북극을 위해 죽어라!'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종교가 사실 그렇게 됐다면 역사적인 섭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극과 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인적인 존재고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니까 원인적인 존재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 다음에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무 목적도 없이 죽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 이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는데 그냥 맹목적으로 죽어요?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 다는 말입니다. 반대적이다 이겁니다.

반대적 교훈이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완전한 종교사상입니다. 완전한 종교 완전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신은 죄악된 인연권내에 고착돼 있는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일시에 혁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저분한 것들을 한꺼번에 깨뜨려 버려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고, 사람의 사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사상을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최대의 비법이 아니겠느냐?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종교는 어떤 것이냐? 자아부정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이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자아부정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타아(他我)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타아 즉 남을 위해서 살라 그겁니다. 그 남은 남이 아닙니다. 하나되는 목적을 중심삼은 남이라구요. 상대적인 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상대적인 입장에 될 때, 그 천지만물은 지어진 물건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기의 소성을 발전시킨 또 다른 나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나를 통해서 형성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럴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완성한 사람입니다. 그냥 완성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아완성은 자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아를 통해서, 다른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타락은 무엇이냐? 타아자각을 한 것이 아니라 자아자각을 한 것입니다.

자아자각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타아자각을 어떻게 하느냐. 그 범위를 자기와 같은 일체적인 감정으로 어떻게 확대시키느냐에 따라 세계적인 인물의 등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같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지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큰 환경을 자기와 같이 사랑해 가지고 그 사랑한 것이 돌아오게 될 때는, 지금 사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보다 차원 높은, 전체를 포괄한, 전체가 하나된 자리에서 사랑의 주체격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보다 높은 환경을 향해서 출발할 수 있는 제2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 기대는 제 3 기대, 제 4 기대로서 차원을 높여 가지고 하나님에게까지 그것이 상승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고차적인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