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예수님은 모든 것을 남기고 가셨다 1960년 06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1 Search Speeches

선한 사람을 희생시키며 섭리하시" 이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역사노정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악당들 앞에 희생시키고 학살시키면서 섭리해 나오셨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뇨?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그거예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시키느뇨? 사랑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신랑이라 했지만 신부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아버지라 했지만 아들딸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자, 하나님의 딸 된 자, 하나님의 가정에 식구 된 자,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가 이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등장해야 합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전선만 이어지면 몇 천리까지도 전달되는 것입니다. 발전이 되려면 주고 받아야 됩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전기가 서로 주고 받아야 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도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아무리 억만 장자라도 자기가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면 소유한 모든 물건이 아무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사탄 앞에 넘겨준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어떠한 것을 갖고 오셨던 것인고? 심정적인 주의와 이념을 갖고 이 땅 위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주가 못 돼요. 설혹 구주가 되더라도 외적인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구주는 될지 모르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을 연결시켜 나가는 구주는 못 됩니다. 진정한 구주는 심정적인 내용을 갖춘 분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주가 그런 입장에 있는 분임을 느껴야만 됩니다.

오늘의 현실을 넘어서 우리 인류의 선조시대를 다시 한번 회상해 봅시다.오늘날 우리가 하나의 때, 하나의 환경, 하나의 중심존재를 고대하는 것은 우리가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타락이라는 명사를 접하기 전, 즉,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세운 한 때를 이루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느 한 때에 이러이러한 환경을 이루고 이러이러한 지도자를 세워 놓겠다는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어가지고 만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이했던들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한 때를 맞이하여 만물을 지휘하고 창조된 환경 전체가 그 호령에 움직일 수 있었던들, 오늘 여러분에게 탄식이란 말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 타락의 보응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하나님께서 세운 하나의 환경과 때를 맞아 지배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되었다면, 오늘의 이 세계는 아담주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으로 너와 내가 한 형제라 할 수 있는 하나의 심정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조상에 의해 타락이라는 두 글자가 만들어진 그날부터 인간은 뚝 떨어졌습니다.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국물도 없을 만큼 떨어졌습니다. 속을 보아도 죽었고 겉을 보아도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뒤적거릴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에게 약을 주고 주사를 놓아서 다시 살리자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어냐? 떨어져 죽은 걸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약을 주든지 주사를 놓든지, 냉수를 붓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살려 놓자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섭리입니다. 그러면 살려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뇨? 한 때를 하나님과, 한 환경을 하나님과, 주도적인 행사를 하나님과 더불어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섭리를 하시지 않는다면 인류는 불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을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공부하면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