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집: 축복의 의의와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 1992년 08월 27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312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 해와를 통한 4대 심정권을 찾" 것

이제 보라구요. 아담이 완전히 완성했다고 할 때 아담 완성은 아까 말한 네 가지 종류입니다. 첫째 아들, 둘째 형제, 셋째 부부, 넷째 부모입니다. 이 4대 심정권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그냥 그대로 실체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이와 같이 완성되게 되면,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와서 모이느냐? 여기에 있지 않아요. 동쪽에 있는 아담 가운데 뭉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서쪽에 있는 해와 가운데 이와 같은 네 종류가 다 뭉치게 됩니다. 그래서 완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언제나 아들을 대할 수 있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어요? 아들의 기쁨이 누구에게 있다구요? 아담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속에 있던 아담 심정권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가지고 상대가 되었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 받으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형제지애(兄弟之愛)입니다. 부모는 그렇잖아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보다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왜 그러냐? 형제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에 자기들의 사랑을 플러스해야 되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부모는 자식이 자기들에게 효도하는 것 이상 형제들끼리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거 왜 그러냐? 형제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위에 자기들의 사랑이 플러스되어 있는 것이 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이 이것을 모릅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플러스된 그 위에 또 플러스하고 합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를 맞게 되면 누나 오빠를 몰라봐도 괜찮아요. 부모를 떠나도 괜찮아요. 왜? 부부의 사랑에는 부모의 사랑이 있고 형제의 사랑이 가(加)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은 부모와 형제가 그리워해 주고, 사랑해 주고, 보호해 줘야 할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더 큰 사랑이니까 위해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집가면 시누이들이 야단하지요? 시집가 보니 시어머니가 야단입니다. 그걸 어떻게 교육할 거예요?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시정이 되는 것입니다. 시부모도, 시누이도 부부의 사랑 앞에는 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뒷받침해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내가 지금 원리강의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 이걸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선생님의 책임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아들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플러스해 가지고 부부의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가 가서 어디서 만나느냐? 여기 있던 것이 여기서부터 이것을 이루어 가지고 이동이 벌어집니다. 부부 사랑 외에는 이렇게 이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참 멋지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실체권으로 볼 때, 형제의 사랑은 다 올라와서 이동하게 될 때…. 형제의 사랑이 하현이고 하나님은 상현이니, 여기에 찾아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고 이렇게 찾아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부부의 심정권이 이렇게 딱 맞서 가지고, 부부의 심정권이 다 움직여서 상·하현이 연결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서 이동해 가니까, 이것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이동하니까 하나되기 위해서는 내려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직은 상대가 없습니다. 여기에 축은 있지만 상대가 없기 때문에 상대권의 대상적인 위치를 찾아가려니 여기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남자는 여자를 알고, 여자는 남자를 알게 되어서 서로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첫날밤에는 누가 당겨 주어야지요? 왜 웃어요? 당겨 주어야 돼요, 안 당겨 주어야 돼요? 신랑이 자기도 모르게 신부를 당겨 주어야 돼요. 누가 하든가 해야 돼요. 그걸 어디서 해야 되느냐? 여기서 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본이 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부모니까…. 부모가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어서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이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서 부모의 자리, 사랑의 꼭대기 자리를 대신해서 갈 수 있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만나는 것입니다. 비로소 여기에 와서 상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갈라졌다가 와서 부딪쳐 가지고 힘 있게 잡아당기니 어떻게 되겠어요? 폭발이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겠어요? 「벌어집니다. 」 그런 체험들을 했어요? 왜 웃어, 이 쌍것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타락한 요소가 많아서 그렇다구. 이렇게 만나 가지고 '아이구, 내 사랑아! 내 님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