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섭리적 현시점 1972년 06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91 Search Speeches

노아의 용기와 인내

노아 할아버지에게는 외로울 때, 어려울 때, 슬플 때, 고독이 극심할 때…. 여러 가지 사정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겠느냐?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을 극복한 내정적인 승리의 심정적 터전을 갖지 못하였더라면 노아 할아버지도 역사시대에 실패한 인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 할아버지가 그런 어려움이 부딪쳐 올 때마다 내적으로 새로이 결심하고 다짐하였던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틀림없는 분이다. 나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나를 이런 자리에 세워 준 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는 내정적인 결의와 심정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이 부딪치는 그 환경에 있어서 하루하루 개척자의 사명을 연이어 나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한 10년쯤 지나서는 노아 할아버지를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다가 한 20년쯤 지나가면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제일 문제이냐?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집안 사람들이 제일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아내라든가 자기 아들딸이 있다면 그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있었다면 노아를 칭찬할 수 있었겠느냐?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할아버지의 아내는 어떠했겠느냐? 그 아내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딸은 어떠했겠느냐? 아들딸들도 반대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는 돌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만일 노아 할아버지가 이와 같은 가정의 반대에 타격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나님의 뜻은 여기서 좌절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신념을 다짐할 수 있는 노아 할아버지가 안 되었다면 그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각된 자기를 갖고 있지 못할 때는 그 환경에서 꺽여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의 아내가 말을 듣지 않고 반대하기 시작했으면, 노아에게 옷을 제대로 해줬겠어요, 밥을 제대로 해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노아 할아버지가 아랫방에서 자면 아내는 웃방에서 자려 하고, 번번이 상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이렇게 몇 해가 지나 반대해 봐야 끝장이 안 날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를 해 가지고 꺾을 가망성이 있을 때는 반대하지만, 아예 가망성이 없게 될 때는 여편네나 자식들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성이 되어 가지고 반대하지 않는 자리를 지나 가지고서야 하나님의 뜻과 소망이 남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동네방네 사람들이 반대하다가 전부 지쳐 떨어졌고, 자기 아들딸이 반대하다가 지쳐 떨어졌고 자기 아내마저 반대하다가 지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 것이냐?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은 다 지쳐 떨어졌다는 거예요. 더 이상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라일 것입니다. '너 이놈의 영감, 영감이 하는 행동은 우리 국민과 민족을 망하게 하는 행동이다'라고 하며, 그 때 나라의 군왕이 있다면 왕권을 가지고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랬더라면 노아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그때는 환경이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일시에 투입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노아 할아버지를 세워 가지고 큰 섭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노아 할아버지가 뜻을 따라 승리하는 날에는 사탄세계가 왕창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아는 사탄은 여러 가지 계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 저 노아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을 안 들었소. 자기의 아들딸이 반대하는 것을 안 들었소.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반대하는 것도 안 들었소. 그러나 나랏님이 권력을 휘둘러 목을 잘라 버리겠다는 위험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 뜻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렇게까지 참소하게 마련입니다.

그럼 왜 그러느냐? 노아 할아버지의 뜻은 한 가정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정도 구해야 하겠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요, 사탄세계를 몽땅 빼앗아 가지고 하늘세계를 이루기 위한 뜻이기 때문에, 사탄도 그렇게 큰 조건을 가지고 노아 할아버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노아 할아버지는 어땠을까요? 그런 것을 한번 생각해 봤어요? '노아 할아버지가 아라랏 산에 올라가서 120년 동안 수고하여 배를 다 짓게 되어 이제 내일 모레가 낙성식하는 날이다. 만 120년 기간이 차는 날이다' 할 때 그 전전날 그 나라가 동원되어 노아 할아버지의 목을 자르려고 할 때에는 어땠을 것이냐? 홍수 심판은 커녕 도리어 자신이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됐다면 어떻게 했을 것이냐? 노아 할아버지가 보통사람이라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했을 겁니다. 120년 동안 그렇게 죽을 고생을 다하여 이제 남은 밑천이라고는 늙어 빠진 몸뚱이 하나밖에 없고, 기력도 쇠진한 이 할아버지, 동정도 안 해주던 하나님이 이제는 동정을 해줄 줄 알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 모레를 기다리고 있는 판인데 목을 자르겠다고 하는 악한 왕이 있다 하게 될 때, 노아 할아버지는 어땠을 것이냐? 그거 기가 막히겠지요?

만일 사탄이 노아 할아버지가 승리하게 되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노아의 목을 졸라매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에 응해서 하나님이 '너 하는 대로 한번 해봐라' 해 가지고 사탄이 자기 휘하에 있는 악한 왕을 시켜 가지고 '네가 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것이고, 네가 해온 모든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으로서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목을 자르려 할 때, 노아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자, 후퇴해야 되겠어요, 그대로 밀고 나가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가야 됩니다」 가야지, 그게 쉬운 일이예요?

통일교회를 믿는데 어떤 사람은 '나 10년 믿었소' 어떤 사람은 '나 20년 됐소' 이럽니다. 20년 된 사람들은 이제 뭐 전도를 안 해도 되는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뭐 그만큼 전도했으니 나는 좀 쉬어야겠다'고 작정해 놓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또다시 명령하게 될 때 '그 명령이야 뭐 그저 그렇지'라고 했다가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자격자로서 설 수 있어요, 없어요? 그때까지가 문제입니다. 비록 하루 밖에는 안 남겼더라도 완성되는 그 시간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이미 일을 시작할 때에 '내가 성공은 커녕 가다 죽더라도 나는 깨끗이 죽겠다'고 각오했을 것입니다. '내가 죽어도, 나 혼자 짓다가 못 지어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열 사람 혹은 백 사람을 동원해 가지고 지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노아 할아버지는 신이 났을 것입니다. '야, 이 배를 짓다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혼자서 120년 동안 지어도 완성할 가망이 없게 될 때 있는 정성을 다해서 배를 짓다가 중도에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완성할 수 있는 동지들이 빨리 생겨나기만 한다면, 노아 할아버지는 죽을 시간을 목표로 해서 열심히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진 노아였더라면, 내가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벌어진다는 신앙을 노아가 갖고 있었더라면, '이 죽음의 자리가 일대의 수난길을 가는 것보다 도리어 간단하고 행복한 길이 아니냐'라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 이틀쯤 남기고 배는 다 지어놨는데 죽으라니, 하나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가능한 자리입니다. 배를 짓기 시작한 지 10년이나 20년 후에 죽으라고 했으면 모르지만, 이제는 다해 놓고 한 이틀쯤 남기고 죽으라고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꽁무니를 빼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내심으로는 이제 상을 받고 하나님 앞에 무슨 좋은 수가 나고 세상은 다 망하더라도 나만은 살아 남을 줄로 알고 있는데 죽을 자리에 내놓는다고 하게 되면, 자! 원망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솔직이 대답해 봐요!「원망합니다」 원망하지요. 원망하고 반대하는 날에는 뜻이고 뭣이고 어떻게 됩니까? 제로(zero)가 됩니다. 틀림없이 제로가 된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낫지, 그게 뭐야?'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