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하늘편 1970년 01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3 Search Speeches

자신이 하늘편이 못 되-으면 어떻게 해야 하"가

그러면 우리 자신이 하늘편의 사람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일의 소망을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 역사상의 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하늘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라도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편을 향해서 달음질치고 하늘편을 위해 애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설사 하늘편에 서지 못하였더라도 하늘편을 향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육신의 피곤함도 개의치 않고 죽을 각오를 하고 움직이는 자가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1970년대의 새로운 아침을 대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60년대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 앞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역사의 배후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습니다. '60년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고, 외로운 장면도 있었습니다. 숱한 시련을 홀로 당해야만 되는 처절한 자리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아무리 그런 자리에 홀로 섰다 하더라도 소망의 문이 열리는 1970년대에 있어서 소망의 기수가 될 수 있고,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1970년대를 맞기에 너무 부족하고 하늘의 뜻 앞에 서기에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과거에 아무리 크고, 추억될 만한 사건이 많고 그 누구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이 있었다 하더라도, 1970년 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제 2차 소망의 기준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는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상하 전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하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던 날이 있었으나, 그날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날이라는 것을 알고, 뜻을 위하여 매질을 당하고 고문을 받던 그러한 시간이 있었으나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던 시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이 아침 이런 환경에서 뜻을 위하여 어려운 자리에 나갔던 그날 그 시간들이 그리워집니다.

여기 이 한 곳을 바라보며 내일의 희망에 넘쳐서 나가는 것보다도, 외로운 심정으로 하늘 뜻에 동참하여 하늘의 권고를 받던 그 시간이, 하늘 편이었던 그 순간이 부정할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진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에게 그러한 순간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하여 노력해야 할 우리 앞에 1970년도 초에서부터 그러한 길이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우리가 이 슬픔의 1970년대를 어떻게 기쁨의 1970년대로 바꿀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민족은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 민족이 져야 하는 십자가의 짐을 오늘날 우리 교회의 식구들이 대신 짊어지고 하늘을 향하여 몸부림치며 나아가 슬펐던 사연을 청산짓고 하늘 동족으로서의 터전을 넓혀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한민국과 삼천만 민족을 위하여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은 자로서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우리의 정상적인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과거를 다시 한번 회고해 보면서 여러분의 과거 가운데서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였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러한 시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하나님이 같이하셨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모진 핍박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갈 길은 한 길밖에 없다고 하며 자신을 갖고 그 환경을 타개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들의 환경을 지켜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든 어려움을 타개해 나온 지난날의 역사를 지난날의 역사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밑거름삼아서 그 이상의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런 수고의 공적을 터전으로 이러한 결실을 거두었다고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서 '이러이러한 나이오니 받아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습이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혹은 천에서 만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는 달라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며 서슴지 않고 내편이라고 품어 안을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