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가야 할 길 1970년 04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7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가야 했던 길

우리가 역사과정을 회고해 볼 때, 남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하나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이며, 또 원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자기편을 위해 가기보다는 먼저 원수편을 위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종착점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원수가 영원한 원수로 남아지는 한 그 종교는 종교로서 가야할 최후의 길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길보다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이요, 국가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와 인류가 가려 했던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다 끝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지고 원수들이 가야 할 길까지도 다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야 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눅 23:34)" 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야곱을 통해서 얻어진 이름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싸움 노정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사인 것입니다. 승리를 못 했으면 하나님은 슬픈 것이요, 서러운 것입니다. 왜냐?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야곱 자신이 승리한 것은 물론이요, 예수님도 승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개인이 그런 입장을 거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가정도 그러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도 그러한 길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 국가를 지도하여야 할 통치자도 그런 운명길을 거쳐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하여 오신 대표적인 책임자이므로 이스라엘 개인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가 가야 할 운명길을 대신해서 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권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라는 한정된 이스라엘만을 치리할 수 있는 권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국가외의 권까지도 이스라엘권 입장에 세워야 했던 것이 예수가 가야 할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복귀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섭리를 추진시켜야 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복귀의 도상을 걸어오는 데 하나님편의 사랑만을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의 사람이 어느 기준까지 형성되었을 때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원수세계에 있어서 그 기준에 해당하는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편을 중심삼은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는 원수의 세계까지도 승리의 권을 적용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종교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복귀의 도상을 걸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는 하늘편을 위해서 뜻을 펴 나오시지만, 그 목적한 결과는 하늘편만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원수편을 굴복시키고 그 원수편을 중심삼아서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못하고서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