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흥망의 분기점 1971년 03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5 Search Speeches

절대자의 소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가 있었다면 그 역사는 어느 특정한 개인을 위한 싸움의 역사로 남아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역사가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도 그것이 하늘땅을 대신할 수 있고 인류가 바라는 단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어느누구라도 이 뜻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뜻과 더불어 가야만 통일교회 역사는 빛날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어떤 특정한 민족만을 위해 뜻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소망하였고, 현 시대에 살고 있는 만민이 바라고 있고, 나아가 미래의 후손이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단 하나밖에 없는 뜻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통일교회는 결코 이 시대의 환경과 더불어 흘러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미래세계에 있어서 행복의 기수가 되고,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는 용사로서 나타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통일교회가 지닌 바의 소신이 인류가 바라는 뜻과 더불어 일치되는 자리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통일교회가 역사적으로 빛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뜻이라는 것은 인류만이 바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인류를 지배해 나오는 역사적인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이 바라는 뜻이 아닐 수 없는 것이요, 현재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가 바라는 뜻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과정을 중심삼고 볼 때도 시대의 변천과 함께 흘러가는 인간의 군상은 우리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뜻과 더불어 가는 사람은 배후에서 절대자가 뒷받침이 되어 시대적인 중심으로 완연히 서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결코 망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자의 소원은 세계에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여건을 제거하여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뜻과 더불어 가는 사람의 과정이 아무리 험하고 비참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것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뜻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자기에게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자극이 되고 장차 소원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슬픔의 고비가 있다 해서 그것이 미래의 뜻을 방지시키고 뜻이 가는 길을 무너뜨리는 동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섭리역사노정을 보게 될 때 거기에는 굴곡이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는 발전했고, 어느 시대에는 후퇴했으며, 어떤 때는 올라가는 반면에 어떤 때는 내려갔던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가 그런 과정을 거쳐왔고 우리도 일생을 통하여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갈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두고 보더라도 신념을 스스로 다짐하는 강한 면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올라가는 그때를 기뻐만 해서도 안 될 것이요, 내려가는 때에는 서러워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려가는 때가 있다면 거기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안식기간으로 이것을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생활이념을 가진다면 아무리 저조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더 저조한 자리에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하여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밑거름으로서 하나의 터전으로서 그것을 흡수할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것입니다. 밤은 낮을 빛나게 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요, 휴식의 기간이요, 재차 연마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수난의 과정에는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