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행복한 무리들 1960년 05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5 Search Speeches

가장 귀한 것을 준비해 "고 다른 모" 것을 버리라 하시" 하나님

앞으로 만천하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울부짖을 때가 올 것입니다. 바라고 의지하는 주권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있는 종교도 믿을 수 없고, 어떠한 학문이나 철학도 믿을 수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왜? 심정으로 시작된 인간이요,심정을 거쳐서 심정으로 종결되는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기원은 말이 아닙니다. 심정을 기원으로 한 인간이니 심정의 인연을 거쳐 심정으로 종결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물로부터 '오! 할렐루야' 하는 송영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송영의 가치를 백퍼센트 구비하려면 심정의 인연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처리의 역사입니다. 어떠한 국가, 어떠한 주권을 본으로 세워서 나가다가 그 국가나 주권이 떨어지면 처리하여 그보다 더 본이 되고 좋은 새로운 국가를 세워 나옵니다. 그렇게 국가나 주권은 처리할 수 있지만 심정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생활과 사정은 처리할 수 있어도 심정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정은 처리할 수 있으되 심정은 처리할 수 없어요. 이 심정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인류의 역사 노정 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세계에 평화의 때는 오지않습니다. 행복의 세계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심정의 세계를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천적인 심정의 세계가 오는 날에는 인간적인 모든 윤리 도덕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깨어집니다. 헌 것이 깨져야 새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말할 수 없이 혼란해집니다. 윤리 도덕관이 깨져 나갑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부가 서로 칼질을 합니다. 다 깨집니다.

이같이 깨뜨리는 일로 천지가 종결된다 할진대 여러분은 미리 그런 자리를 찾아가서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있는 사람들은 자살 구멍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기도합니다. '아버지, 자살 구멍을 찾아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역사적인 종말을 예감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육신은 좋다 해도 마음이 즐겁지 않구나. 아무리 행동은 즐거워도 마음은 안식하지 못하는구나!' 이런 느낌이 있는 사람은 선각자입니다. 심정의 세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환경을 수습해 나가는 선각자입니다.

안식의 터전은 마음이 아니라고 하는 자리가 아니요, 사정과 형편으로 하여금 일시 휴식하게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심정이 영원무궁토록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입니다. '욕을 먹어도 좋고 매를 맞아도 좋고 그 무엇이 내 생애를 빼앗아가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천적인 심정의 인연을 끊은 인간이 생명이 있는 인간일소냐! 이것을 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원은 심정의 원입니다. '심정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류는 찾고 있습니다.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때 기필코 해결지어야 할 문제를 앞에 놓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이냐? 밥 잘 먹는 일이 아니요, 주권을 잘 세워서 빛나는 문화를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동서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부의 빛깔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원칙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이 이 땅 위에 벌어질 수 있는 이념이 나온다 할진대, 평화와 행복의 세계, 천국은 자연히 올 것입니다. 그런 일을 영영 못한다면 하나님도 인류의 역적입니다. 왜? 무엇을 하지 말라, 무엇을 버리라고만 하셨지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 믿을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최대의 선물을 준비했기에 네가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이나 받고자 하는 것이 있더라도 다 잊고 오직 한 가지만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마운 것입니다. 알고 보니 고맙다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노정에서 사도들이 수고해 왔지만, 수고하여 무엇을 얻으면 또 잃어버리고 눈물지어야 할 것을 아시기에 다 버리고 한때만을 소망하여 참고 고대해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