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집: 우리의 인연 1968년 11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0 Search Speeches

하나님은 인간과 "불어야 슬""-서 -어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셨느냐? 모든 출발의 동기 자체가 사람으로 되어 있고, 그 창조목적 자체도 사람에 귀결되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되었느냐? 타락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다가 실수하면 그 실수한 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말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일하다 실수를 했다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각한 사람이 책임지고, 실행한 사람이 있으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창조 이상을 중심삼고 사람을 창조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라 할 때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 안됐다고 해서 그 실수를 창조물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조물이 변화가 되어 원하던 것이 안 됐다고 해서 그 물건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원하셨던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하나님의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 되지 않으면 기쁨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과 나와는 반드시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기쁨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앞서서 나올진대 기쁨의 동기가 될 수 있느냐?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야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슬픔의 관문을 통과해야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슬픔의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가는 길은 역사적인 슬픔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타락한 인생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쁨은 선의 목적인 창조이상 실현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그 기쁨의 요건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슬픔의 요건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연결되어 인류가 비운을 당하였던 이 슬픔의 요건을 파고 들어가서 해체해야 됩니다. 그래서 비통할 때는 `하나님의 슬픔이 이랬구나'하고 느껴야 됩니다.

이 슬픔은 하나님 자체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는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야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슬픔이 시작됐기 때문에 인간이 선두에서 이 슬픔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슬픔에서 벗어나실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