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하늘편의 내적 슬픔 1970년 03월 29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61 Search Speeches

승리의 귀결점

야곱 일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외적인 민족의 수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 앞에 제물을 바치는 데에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땅에서 그 수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땅에 가서 그 길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이나 요셉이 애급에서 감옥생활, 노예생활, 종의 생활을 하면서 죽음의 교차로에 부딪칠 적마다 하나님께서는 번번이 책임을 지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해방시켜 주신 것은 요셉 개인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죽음길에서 구원해 주실 때 요셉 일파를 구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의 열두 형제를 중심삼은 일가족이 원수의 국가 애급에서 발을 붙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오는 개인이나 가정이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것도 비참하고 불쌍하지만, 그것을 준비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께서는 내적인 입장에서 더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들보다 더 비참하고 불쌍한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체가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잘 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내 가정이 가야 할 탕감의 노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개체가 완성할 수 있는 탕감의 한계점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안팎의 여건을 갖추어 가지고 내가 가는 길에 맞게 협조해 주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탕감조건을 거친 다음 가정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을,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 이상을 준비해 주신 것을 나는 직접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개인이 극한 환경에 부딪칠수록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자리, 노예의 자리, 감옥의 자리, 죽음의 교차로까지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낙망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고, 그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염려하게 될 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생명을 각오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가정적 출발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노예의 길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감옥생활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신 것과 같이 죽음을 걸고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교차로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에서 뜻을 위하여 죽게 될 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개인이 해방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 수난을 당한 대가의 보응으로 가정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길에는 가정이 거쳐야 할 수난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안팎으로 부딪쳐 오는 시련과 고통이 가중되더라도 쓰러지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원수의 입장에서 칼을 들고 나서더라도 거기에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이끌고 종의 신세를 달게 받고, 노예의 신세를 달게 받고, 죽음길도 달게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족이 갈 수 있는 해방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련이 닥치고 가중된 십자가의 죽음길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낙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뜻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귀결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