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배반자와 하늘 1969년 11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5 Search Speeches

외적인 배반보다 내적인 배반이 " 크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사상과 철학의 2대 사조를 이루어 `정신이 먼저다' `물질이 먼저다'라고 하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정신이 없는데 `내가 간다' 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밥을 먹는 데 있어서도 그냥 `나는 먹는다' 할 수 있습니까?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다음에 먹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어느 것이 먼저냐? 내적인 것, 즉 생각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몸의 욕망이 큽니까, 마음의 욕망이 큽니까? 몸의 욕망이란 밥을 한 그릇 더 먹으면 양이 차듯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큽니까? 마음의 욕망에 한계가 있어요? 물질적 욕망, 즉 몸의 욕망에는 한계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선을 넘어 요구하는 것은 마음의 욕망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물적인 생리작용을 하게 하는 것은 외적인 물질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작용시킬 수 있는 보다 높은 기원의 존재, 즉 무형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인생의 근본문제도 이렇게 보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태어나서 무엇을 좋아합니까? 물론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애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머니를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어머니를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 젖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도 애기가 자기를 보고 좋아하기 때문에 젖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무한히 주었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과 정성을 퍼부었기 때문에 퍼부은 그만큼 나를 따라올 것이라고 하는 절대적 관계에서 그 애기를 대하는 것입니다. 애기를 중심삼고 보면 물질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어진 것 같지만,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는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이 주체인가? 어머니가 주체입니다. 물질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어머니이니까 어머니가 주체인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두 작용의 욕망 중에서 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욕망을 중심삼고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외적인 세계의 욕망은 참된 욕망이 아닙니다. 내적 세계의 욕망이 참된 욕망입니다. 외적인 세계의 욕망은 더 편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단계 끊고 넘어가는 것이 내적 세계의 욕망입니다. 외적 세계의 욕망은 어디까지나 분파적입니다. 내적 세계의 욕망이 전체적입니다. 몽땅입니다 몽땅.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사람들이 `몽땅 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욕망입니다. 하나님은 전체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자라는 것도 외적인 입장에서의 배반자보다도 내적인 입장에서의 배반자가 더 큰 배반자가 아니겠느냐? 그러면 인간이 어디에서 죄를 저끄러뜨렸느냐? 외적인 입장에서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알고 있듯이 선악과라는 물질로 된 과일을 따먹은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것이 여태까지 지속되겠습니까? 생명의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남자에게 있어서나 여자에게 있어서 제일 원수는 자기 생명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원수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생사문제, 생명을 노리는 자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다음에는 대한민국의 욕망을 빼앗으려는 자들입니다. 세계를 살리려는 욕망을 갖고 가는 것을 막으려는 자들이 원수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제일 사랑하는 것을 막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원수는 누구냐? 여러분, 이북에서 선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한은 착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백성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백성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착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 내 원수는 누구인가? 내 생명을 노리는 자가 원수입니다. 그 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로채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금덩이입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이나 혹은 몇 대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패물을 가지고 있는데, 지식이 금방 죽게 되어 당장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그 패물 하나밖에 없다고 할 때 `아들은 죽어도 좋다. 이 패물을 보관해야 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때에는 그까짓 패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생명 문제와 사랑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