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전문가 1970년 02월 25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83 Search Speeches

후계자를 찾지 못하신 예수님

전문분야를 놓고 따져 볼 때, 예수님은 개인 중에서도 세계적인 개인입니다. 가정 중에서도 예수님이 태어난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입니다. 종족도 수많은 종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종족은 역사적인 종족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섭리노정을 통해서 추구해 나가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다른 어떤 시대의 국가보다도 가치있는 입장에서 있는 국가입니다. 그분이 모색하는 세계도 역시 최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복귀섭리라는 전문분야를 두고 볼 때, 어느 시대의 그 누가 섭리의 뜻을 세워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그 사람보다 더 전문적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예수님이 바라는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제자가 되려면 제자 중에서도 최고의 제자가 되어야 하고, 아들이 되려면 아들 중에서도 최고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내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전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의 관계된 일체의 사연을 대할 수 있는 상대자, 즉 수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적인 심정문제를 두고 보나, 외적인 가정문제를 놓고 보나, 혹은 복귀노정에서의 하나의 소망을 놓고 보나, 이것을 전폭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전문분야의 후계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온 세계를 대하고 나설 때에 이 복귀도상에서의 최고의 권위자로 나타났지만, 그 자신의 위치를 상속해 줄 수 있는 후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그런 입장에 설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는 모든 생활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이런 대표적인 기준에 설 수 있는 후계자가 없을 때에는 전국을 돌면서 합당한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의 역사를 엮어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후계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슬픔이요, 역사적인 슬픔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슬픔이요, 세계적인 슬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해 수난의 역로를 거듭 걸으시면서도 앞으로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터전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이스라엘 선민을 키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스라엘 선민은 전문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 서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가진 입장에 서기는 했지만, 그러한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지상에서 새로이 모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예수님이 가야 할 공생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통해서 후계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맨 처음부터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그럴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과업을 빠른 시일 내에 어떻게 상속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있어서나 자기의 분야가 아닌 문제까지도 상속해 주기 위해서 제일 빠른 길을 갖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금년에 못 하면 내년에 하고, 혹은 20대에 못 하면 30대에, 30대에 못 하면 40대에까지라도 연장시켜 가면서 일생 동안 해도 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이것을 어느 한정된 기간내에 계승시켜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은 얼마나 초조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배운 바와 같이, 여기에는 반드시 조건물과 기간이 필요하고, 아담을 대신할 중심존재가 필요합니다.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3대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 앞에 조건적인 존재가 되느냐? 그 조건적인 기간을 해결한 터전 위해서 조건적인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느냐? 이 조건적인 존재와 아담적인 존재인 예수님이 어떻게 합하느냐? 이러한 복귀섭리의 문제는 탕감내용을 중심삼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대니, 실체 기대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