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우리의 처지 1972년 07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 Search Speeches

개인을 통해서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보면 혼자 다니고 있습니다, 혼자. 혼자라고 생각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소우주다. 인간은 성상과 형상, 내성과 외형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통해서도 그렇고 외적인 모든 상징적 형상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만유의 공통 요소를 전부 다 지닌 모체다'라고. 인간은 소우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은 아무개 아들딸로 덩그렇게 태어나 가지고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서 20년이면 20년 역사를 지나온 그 사람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것은 인간 창조 이후 역사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선 것이 아니냐? 그 한 사람의 움직임은 이 우주를 대표한 움직임이 아니냐? 그러한 배후와 더불어 자각된 자신을 갖고 나서는 사람은 당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그 생명은 오늘날 아무개의 30여년 생애권내에 있는 그런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를 주관하고 남을 수 있는 소망적인 생명을 말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자각된 입장, 보다 큰 인연적인 배후와 더불어 자각된 자아를 들고 나서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강해야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힘의 균형에 있어서 열세자는 싸움에서 패하는 것이요, 강세자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열의 차이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우열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되느냐? 자기 몸뚱이가 뚱뚱하다고? 힘이 있다고? 아닙니다. 이어진 유래와 더불어 그 유래의 주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남겨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 하게 되면 그 교인은 통일교회의 전시품입니다. 박람회의 모든 출품작은 아무리 구석진 자리에 놓여 있더라도 그 나름대로 거쳐온 당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자기 나름의 당당한 무엇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드러진 자리에 놓인 것이면 그 자리에 있을 만한 그 내적인 인연에서 평균적인 인연을 거친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의 출품작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통일교회 교인 그 자체로서의 교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대표한 전시품과 같은 입장에서의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그를 붙들고 헤쳐 보게 될 때, 그를 통해서 통일교회의 현재를 알 수 있어야 됩니다. 확실히 알 수 있어야 된다구요. 먹고 사는 그의 생활을 통해서 통일교회의 현재를 역력히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통일교회의 운명과 더불어 그는 길이길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를 또 헤쳐 보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교회 역사를 엿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보다 내적인 인연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통일교회 역사의 깊은 자리는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하나님은…. 하나님까지도 동원되어 있는 것은 뭐냐? 사랑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다가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 자기 자체를 투입해 나가자는 거예요. 이것이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개체가 자리잡아야 할 처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가면 선진국가, 미국이면 미국 국민과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게 뭐냐? 밥을 먹으면 우리가 더 많이 먹는다구요. 여러분, 뭐 미국은 자유의 나라고 무엇이고 그러지만 그 사회에 가 보라구요. 우리는 자유의 나라, 개방된 나라같이 생각하지만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구속되어 있다구요. 법을 어길 줄 모릅니다. 금을 딱 그어 놓고 어제 아침까지 서쪽으로 가던 길에 오늘 동쪽으로 가라는 푯말만 돌려 놓으면 서쪽으로 가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 있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없다고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있건 없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도가 높은 국민입니다. 선진국가 국민인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부자유입니다. 자유가 아닙니다.

그 자유라는 것을 거칠 수 있는 전통적인 인연을 어느때나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그러한 국민이기 때문에 그 국민은 역사를 보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격자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증하지 못하는 사람은 파탄자요. 현재를 망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생활체제로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증하고 역사를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결국 선진국가의 국민입니다. 그 한 사람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한 사람을 엿봄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전체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망하더라도 자기 개체와 더불어 망하지 않습니다. 그가 쓰러지더라도 그 개체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와 더불어 쓰러지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통일교회와 더불어 죽고, 살더라도 통일교회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자기와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사는 사람입니다. 그게 애국자입니다. 죽더라도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더불어 죽고, 살더라도 나라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