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남은 때 1970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3 Search Speeches

영원히 선하고 흥하고 복받" 자리

공적인 탕감노정이 천년 만년 계속되어 그 목적을 향하여 가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의 사적인 생활권내에서 탕감해 가지고 자기 일대에 공적인 목적의 세계를 맞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적인 위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위인의 자격과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또, 그 메시아와 동반할 수 있고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무리는 인류 앞에 세계사적인 소망의 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탕감기간, 그 탕감기간에 제시해야 하는 탕감조건, 그 탕감조건과 하나되는 `나', 그 중의 `나'라는 것은 지극히 위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탕감노정의 한계점에서 남아진 때입니다. 그러면 이 남은 때에 어떻게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냐? 그 정성은 자기 일신을 위해 들이는 정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사에 미쳐질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라보는 세계가 여러분의 눈 앞에 다가와 부딪칠 것입니다. 그 순간을 휘어잡아 가지고 밀려오는 큰 파도를 타고 도리어 거꾸로 전부를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6천년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나는 찬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찬스를 부각시켜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은 위대한 사랑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받을 수 있는 시기를 상실하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도 3년이란 기간을 걸으신 것입니다. 이 3년 기간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3일 기간이라도 세워야겠기에 목숨을 걸어 놓고 3일간 담판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사적인 기간, 공적인 3년의 탕감노정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사적인 3일 기간을 어떻게 하여 세계적 인연과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몸부림치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도 한 것이요,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했으며, 그러고 나서 다 이루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예수님 일대의 탕감은 물론이요, 역사적인 탕감의 인연에 그것을 연결시켜 놓기 위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사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아니면 공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일생을 투입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때요? 공적인 탕감을 위하여 공적인 환경에 일생을 투입하겠다고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무리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는 창건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순간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는 남아진 때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야 할 시련노정입니다. 그래서 자체의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개인적인 생활을 하느냐, 공적인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사고 팔고 하는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또,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생활이냐 사적인 생활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감정이 사적인 감정이냐 공적인 감정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 맹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역사를 탕감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면 누구나 소원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런고로 생활 속에서 사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공적인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자가 중요시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라는 것은 무엇이냐? 죄는 사적인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도 사적인 기준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것이 도수를 넘게 되면 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넘으면 악하게 되고, 망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선할 수 있고, 영원히 흥할 수 있고, 영원히 복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망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죄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악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그것은 바로 공적인 자리입니다. 밥을 먹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먹어야 합니다. 일을 해도 공적인 일로, 말을 해도 공적인 말로 소화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체를 공적인 것과 연관지어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