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애달" 심정의 동반자이와 같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현실에서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생애 전체의 가치를 찾아세우는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 땅 위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분이 바로 2000년 전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사신 분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먹는 빵 한 조각에, 입는 한 벌의 옷에 하나님의 애달픈 눈물자국이 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슬픔이요, 탄식의 조건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오셔야 할 그분, 그 주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실 것인가. 그분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주기 위한 이념의 주인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천리원칙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갖고 그 사랑을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주기 위하여 다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오시는 그 주님을 통해서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지금까지 6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상속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 땅 위에 오셨다 제물로 가신 예수님의 애달픈 심정의 동반자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신앙자들이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땅 위에 기독신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기독교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나라에 백성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번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고하신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아 예수님께서 이땅을 대해 애달파하셨던 그 심정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쳐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인 이땅의 모든 악의 세력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그는 그야말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있었는데, 역사상의 선조들은 그들을 매장하고, 또 핍박하고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 자체를 세워 그러한 역사적인 모든 잘못을 청산짓고자 하는 것이 여러분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이를 위하여 피흘리는 십자가의 길을 참고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다음에는 지금까지 6000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자기 일신의 영광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였던 그 길을 뒤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어떠한 영광을 위한 길을 가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또는 수많은 선지 선열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또 죽어 영계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 믿고, 죽는 것도 자기만이 구원을 얻기 위해 죽는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도 아버지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