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집: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의 대신자 1993년 10월 08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93 Search Speeches

출애급한 목적은 나라를 세우" 것

이러한 가인 아벨의 문제가 지금까지 복귀노정에 있어서 역사를 통해서 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기를 중심삼고 연장한 경우에는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 아벨, 이것이 세계적으로 연장된다구요. 가인권과 아벨권으로 분립해서 이것을 최후에 결말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기준, 가정 기준, 종족 기준, 민족 기준, 국가 기준, 세계 기준, 천주 기준, 하나님 기준까지 이렇게 해서 8단계입니다. 1, 2, 3, 4, 5, 6, 7, 8 이렇게 수습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이것은 개인적 기준에서 실패했습니다. 가정 기준을 중심삼고 복귀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그것이 야곱의 가정입니다. 그 다음에 모세 가정은 민족 기준입니다. 국가 기준은 예수님 가정입니다. 세계 기준이 재림주의 가정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4단계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하려고 했는데 야곱의 가정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가나안을 눈앞에 바라보면서도 광야에서 1세와 같이 죽어 갔다구요. 왜냐하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석판을 파괴하고, 반석을 두 번 쳤다구요.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어요.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세는 전부 광야에서 죽어 독수리 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선두에 선 모세도 광야에서 죽는 것입니다. 1세는 모두 광야에서 죽어 버리고 2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거라구요.

그러므로 이 40년 탕감 역사는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 40년 광야노정을 통과해서 상륙한 후 2세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은 무엇이 있느냐? 출애급한 목적은 이스라엘나라를 찾기 위함입니다. 국가입니다. 가정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민족은 이집트 땅에 있었어요. 민족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살아도 그들의 일은 나라를 어떻게 건국하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이 절대적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도착해 보니까 거기에는 이미 가나안의 7족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가지고 평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장과 목장을 갖고 있었고, 온갖 생활의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고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거지 중의 거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40년간 광야에서 살아 온 이스라엘 민족이 갖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거지 중의 거지라구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구요.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우선 먹을 것을 구해야 되는 거예요. 일해서 구해 오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문제였다구요. 어머니들이 이웃 가나안 7족의 가정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해서 밥을 얻어 오더라도, 그렇게 해서 자기의 일족을 먹이더라도 철저하게 훈시를 해야 했다구요.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건국을 해서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허락을 얻고 이러한 것을 한다.' 하며 울면서 건국하는 데 일심 일념을 모으게끔 교육해야 했던 것이 어머니들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일을 하며 쌀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받아 오면서 점점 어떠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느냐 하면, 자기의 아들딸이 있으면, 아, 저 집에 시집가면 좋겠구나, 가나안 7족의 유복한 가정에 딸이 있으면, 저 딸을 나의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하지만 거기에 앞서서, 그러한 생각 이상으로 '우리가 출애급해서 40년 기간을 소비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것이다.' 하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건국하려 사상적인 기대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라고 있었는데 그러한 사상적 기반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있으면서 '아, 이집트에 돌아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하면서 '이집트에 있을 때는 밥도 먹을 수가 있었고 옷도 무엇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집트에 돌아가면 좋겠다.' 했다구요. 자녀를 낳고 자녀가 크게 되면 그의 앞에서는 그런 것을 말할 수 없으니까 입을 닫고 있었지만 이집트의 생활을 중심한 습관성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