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집: 내 고향과 내 집 1991년 01월 20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95 Search Speeches

일제시대 친구의 결혼식 "러리 서러 가서 있-던 일

일제 때 일본에서 명문 대학을 나온 우리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목포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외동딸한테 장가를 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요즘처럼 예복을 입고 신식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군복 입고 꽃 하나 달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부잣집이니까 도지사로부터 전부 다 불러와 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딸 결혼식을 하는데, 나한테 들러리를 서 달라고 해서 내가 친구로서 들러리를 서러 갔다구요.

갔는데, 돈이 많으니까 양복점을 택해 가지고 들러리 설 때 입을 예복과 나비 넥타이랑 와이셔츠랑 양말을 다 만들어 놓았어요, 사위 키를 중심삼고. 그 친구 키가 얼마나 크냐 하면 나만 해요. 키가 나와 거의 비슷해요. 그래서 사위를 중심삼고 그 사이즈로 와이셔츠를 떡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런데 내 몸뚱이가 얼마나 두꺼워요? 이렇게 두껍거든요. 햐, 이걸 입어 보니까 뺑뺑해 가지고 들어갔다가는 그냥 빠져 나와요. 그런 걸 입으니 옷이 이렇게 됐지요. (몸짓을 해 보이심. 웃음) 와이셔츠니 뭐니 전부 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게 올라갈 거 아니예요? 이렇게 하면 이게 올라가고, 이걸 놓으면 와이셔츠가 전부 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얼마나 창피하던지, 이래 가지고 이렇게 오그리고 서 있었던 일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웃음) 아이고, 창피했던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말이에요…. (웃음)

그것이 내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하게 되면…. 그때가 7월이었어요. 더운데 땀을 흘리면서 이래 가지고 들러리 섰던 그 생각을 하면 '아, 지옥이 이와 같이 어려운 곳일 것이다.' 하고 언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축에 못 들어가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동서남북을 버젓하게, 천하 어디를 가든지, 하늘나라에 가나 지상세계에 가나 당당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이 돼야 돼요. 이게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