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섭리의 십자로 1972년 07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7 Search Speeches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시하지 않고" 돌아갈 길이 -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면 내가 설 자리는 어떤 곳이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내가 설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섭리적인 십자로권에 서 있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가는 길도 있고 오른쪽으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안 그래요? 왼쪽이나 오른쪽 중에서 오른쪽으로 가라. 그렇지 않아요? 왼쪽으로 가면 좌익세계요, 오른쪽으로 가면 우익세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라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에 의해. 왼편 강도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 예수가 뭐야? 다른 사람들은 살려주었으면서 너는 왜 못 살려?'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인류역사에 그런 것을 뿌렸기 때문에….

미국이 기독교문화권의 나라입니다. 미국이 오른편 강도가 되어야 될텐데, 하나님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 대신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방파제가 되고 예수님의 사상으로 지탱해 가지고 몸부림쳐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허리가 부러져 가지고 똥을 싸고 뭉개고 있다는 거라구요. 역사는 심은 대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십자로를 보라구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될때에 바라바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바라바는 누구냐 하면 그 당시에 있어서 폭동을 일으킨 반동분자라구요. 요즘 공산당들이 말하는 반동분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바라바는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라구요. 그 다음에 예수님이 있어요. 이렇게 네 인물이 등장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심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리라면 그 진리의 형태로 세상을 거둘 수 있는 가을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와 같고, 지금 아랍권(회회교권)은 바라바권입니다. 회회교권은 칼을 가지고 나서고 있는데, 그것은 종교의 원리원칙적인 이념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왼손에는 코란경,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나서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바라바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서 지배하려던 무대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아랍권 전체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열두 지파가 축복 받은 그 땅이 전부 다 회회교권에 말려들어간 거예요.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다시 오시는 예수권입니다. 이렇게 색다른 형태의 십자로가 생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세계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보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느냐? 내가 우익이냐, 좌익이냐? '내가 자기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라는 것은 '하나님이고 뭣이고 없고 자기만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한 바람에 휘몰리는 개인과 같이 가정도 좌익 가정이냐, 즉 왼쪽 가정이냐, 오른쪽 가정이냐, 자기만의 가정이냐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가정은 하나님이고 뭣이고 없는 회색분자, 내가 이익 보면 된다는 가정입니다. 여기에 색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만을 붙드는 무리들입니다.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재림시대가 되어 온다는 것을 우리가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위하여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것과 같은 것을 재차 맞이할 때입니다. 십자가로 갔으니 십자가로 와야 됩니다. 울음으로 갔으니 울음으로 와야 됩니다.

오늘날 참다운 인간은 어디에 있느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 일신을 다 부정하는 자리, 생사의 기로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질 수 있는 자리에 섰기에 오직 삶의 한 역사적인 방향이 설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세상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끝날에는 밀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 그거라고요. '내 뜻대로 마옵소서, 내뜻대로 마옵소서' 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익도 좌익도 전부 다 인간의 뜻입니다. 오늘날 양심주의나, 뭐 나만 중심삼아 가지고 살면 된다고 하는 것은 전부 다 인간주의예요. 다 인본주의예요. 인본주의의 출현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예요. 신본주의를 위주로 한 인본주의의 형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신본주의를 부정한 인본주의의 형성이 타락이 아니었어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본주의를 부정하고 신본주의의 긍정에서부터 인본주의의 긍정을 재차 추구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절대시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죽음길을 가더라도 천도를 따라가야 된다고 하는 것을 인류역사의 전폭적인 사실을 두고 보여 준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도 마찬가지라구요. 혼란된 환경을 이어 가지고 '내 이익만 한데 모으면 된다' 이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놈은 망하는 거예요. 또, 자기 당파의 이익을 꿈꾸는 것들도 망합니다. 망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지만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끝까지 변호하고, 또한 자기가 살아 있는 것, 단체가 건재한 것. 나라가 있는 것은 그 중심을 위하여 천도를 위하여 있다고 옹호하고 나설 수 있다면, 그러한 개인이나 단체나 민족과 국가는 산다고 봅니다. 지금 때가 그런 때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