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집: 삼시대를 위한 책임 1973년 08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9 Search Speeches

현재의 위치를 확정"지 않고" 안심하고 갈 수 -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일생을 함부로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 각도를 측정해야 됩니다. 탐색반이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러 갈 때는 반드시 경도 몇 도, 위도 몇 도 이렇게 각도를 재면서 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 방향을 몰랐다간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일생생활도 각도를 측정해 가지고 몇도 어디로 가고 몇도 올라가고 몇도 내려가고 몇도 좌우로 간다는 것을 가릴 수 있는 현재의 위치를 확정짓지 앉고는 안심하고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러지 않고 안심할 수 있어요? 나는 좋다고 가더라도 즉각적으로 눈앞에 파손될 수 있는 운명이 다가오는데, 그래도 안심이 돼요?

사람들은 인생은 무엇이냐, 인생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어떻게 되어 왔느냐, 인생이 가는 행로가 어디냐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한탄적으로 결론지어서 '인생행로는 고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다구요. 고해인데, 아는 고해면 이롭다는 거예요. 알고 가는 고해라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모르고 가는 고해일 때는, 어떡할 테냐?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안심하고 시집 장가를 갈 수있어요? 그것을 무엇이 보장하느냐 이거예요. 보장을 못 한다구요.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일체의 내용을 다시 규탄 규명해야 되겠습니다. 규탄·규명한다는 그 자체는 우리가 믿고 신의의 인생행로로 적응시킬 수 없다는 것이 아니냐? 과연 그렇다는 거예요. 깜깜한 밤중에 방향도 모르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 수가 있어요? 살 수가 있냐는 말입니다. 가면 갈수록 가망이 없는 자리에서 여러분은 가만 있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소리를 질러 누굴 부르든가, 죽음을 향해서 비약을 하든가 초월을 하든가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가망이 없으면 돌이켜 뒤로 돌아오든가, 출발을 다시 하든가 하는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행로이기 때문에, 과거의 수많은 뜻있는 사람들, 성현현철들은 그런 일을 하기에 생애를 바치고 죽음의 경계선을 왕래하면서 싸워갔던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그렇게 싸울 사람들이 나타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러한 행로를 지나가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그리고 보면 오늘 마음껏 앉아 가지고 이러고저러고 이러고저러고 할 여유가 없다구요. 심각한 일입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이 가는 길에 무슨 금을 그어놨나? 어때요? 그 길을 전부 다 더듬어 가야 된다구요. 한 번 '야, 이렇게 간다!' 생각하고 갔다간 엄청난 결과가 벌어진다구요. 반드시 과거와 조정을 하고 현재와 조정을 해 가지고 미래와 직선 방향을 그려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는 역사적인 모든 위험이 동반되는 것이요,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노정에 비참상이 있었다면, 그 비참상이 재현되어 가지고 동반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넘어가지 않고는 미래의 목적점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험천만한 개척적 행로를 여기서 더듬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이 언제 한 가정을 책임졌다고 생각해 봤어요? '내 가정은 틀림없이 이 세계의 인류가 갈 수 있는 표본적인 가정으로 가게 하겠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심각한 문제라구요. '아무렇게나 흘러가고 되는 대로 살지' 하는데, 되는 대로 살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을 찾아가서 그분과 더불어 담판을 하고 그분과 더불어 해결점을 지어서, 오늘의 내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 현실을 확정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거예요. 행복은 현실을 떠난 자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구요. 현실에 보장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이 과거의 결실로서 등장하는 행복의 기점이 되어야지, 과거의 결실의 자리가 아닌 현실은 이상적인 기점이었던 과거까지 부정할 수 있는 내용에 부딪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