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1970년 12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 Search Speeches

절대적인 생명

생명이 절대적이에요, 상대적이에요?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것으로 하고 싶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것은 누구나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 앞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에 절대적인 요소가 있다면 절대자가 절대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절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절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생명체를 절대시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내 생명체를 상대적 입장에 두고 좋아하시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 해도 외발 가지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외발로 암만 움직이려고 해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좋기는 뭐가 좋겠습니까? 여러분도 혼자 앉아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까? 혼자서 `아, 나는 백만장자가 되어 돈이 이렇게 많다. 아이구 좋다' 하면서 좋아 할 수 있습니까? 한편으로는 좋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좋아해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이것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절대자의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거기에 자기의 기쁨이 있다 하더라도 안팎으로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은 자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절대자의 상대적 입장이요, 그 절대자는 우리의 상대적 입장에 섰는데도 상대를 절대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좋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속닥속닥 이야기할 수 있고, 웃고,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좋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상대적으로 주고 받으면 그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상대적 입장에서 우리를 절대시하는 입장에 세운 것은 좋아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아하기 위해서…. 창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하느냐? 손으로 만지는 것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비둘기를 만져 보았어요? 비둘기를 잡아서 만져 보면 보들보들하고 아주 말랑말랑합니다. 만져 볼수록 정이 듭니다. 한번 잡아서 만져 보세요, 어떤가. 손으로 만질 때 좋다고 느껴지는 것이 손으로만 좋은 거예요? 무엇이 어떻게 좋은 거예요? 만지고 있는 손만 좋아해요, 보고 있는 눈만 좋아해요? 그것만이 아니라 내 몸 전체가 좋아합니다. 그러니 밥먹는 것도, 냄새맡는 것도, 보는 것도 몸 전체가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좋기는 다 좋은데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상대자밖에 없습니다. 내가 `얘야' 하고 부르게 되면 상대적으로 `네에' 하고 대답하고, `야'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여보오'하고 부르면 다정하고 부드럽게 `왜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퉁명스럽게 `여보' 하고 부르면 똑같이 `왜 불러'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산울림과 마찬가지로 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먹는 것입니까?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밥을 보면 좋다고 먹지만 그런 것은 일시적이라는 거예요. 실컷 먹고 나면 먹을 것을 더 주어도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대해 가지고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잊어버릴래. 싫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봐도 봐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네가 앞에 서고 내가 뒤에 서고 하면서 수레바퀴같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는 현재의 입장까지 언제 오겠나? 지금 6천년 역사가 출발했던 자리에서부터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니 빨리빨리 이야기하자구요? 「천천히 해주십시오」 천천히 하자구? 「예」 아침 못 먹게 되면 배가 고프잖아요? 「먹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나도마찬가지예요? (웃음)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서려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공인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창조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사람하고 비슷한 원숭이를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공인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원숭이를 보고 `원숭이님' 할 수 있도록 원숭이가 그런 소성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숭이님, 이리로 왕림하십시오'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