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0집: 초점을 맞추라 III 1999년 03월 02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134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가문과 가훈

오늘 강의해야지요? 내가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구만. 알겠어요?「예.」3·1절을 빛내는 것은·. 우리의 3·1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하는 한 가문에서 태어난 것이 나예요 우리 종조부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박사의 둘도 없는 친구라구요. 또, 최남선하고 아버지하고 친구입니다. 독립선언문을 쓰는데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누구한테 들었느냐? 할아버지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너는 할아버지보다 흘륭한 손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나를 참 사랑했어요. 이승훈 씨가 오산학교를 세운 배후에 우리 할아버지가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모르지요? 역사는 아는 사람이나 알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가문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여덟 살, 아홉 살 때도 자다가 일어나면 말이에요, 색다른 사람들이 윗방에, 사랑방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밤에 잔치를 해요. 그거 왜 모이냐고 물어보면 말이에요, 귀엣말로, '독립군이 왔다, 독립군.' 그래요. 그때, 말을 들으면 그 사람들은 천막 같은 데서 자고, 지붕도 올라가고, 담도 한 손만 대고 넘어간다고 해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 밤에 전부 다 밤참으로 국수를 해주는 거예요. 닭을 잡고 국수를 하는 것이 제일 빠르거든요. 밥을 하는 것보다도 빠르고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어요. 이래 가지고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닭도 잡아먹고 국수를 해 먹었는데, 나는 왜 안 줬느냐고 투정부리던 생각이 나요. (웃음) 그러면 이녀석,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충고를 받고, 안 하겠다고 손을 들고 선서하던 생각이 나요. 내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구요.

또, 우리집의 가훈이 그래요.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주인인 어머니 아버지가 못 먹더라도 그 밥상을 갖다가 먹이는 것이 우리 집안의 가훈이에요.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 내가 세계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밥을 먹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밥 먹는다고 해도 묻지 않아요. 거지도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게끔 문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서도 그렇고, 남미에 가서도 그래요. 일생 동안 그렇게 산 것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요? 일본이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을 통해 가지고 일본 사람을 이전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전라도 땅, 경상도 땅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땅의 사람들은 전부 다 만주로 보내는 거예요. 그 곳이 제일 가까우니까. 가는 데 차비가 있어요? 걸어가야 됩니다. 남부여대(男負女戴)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집이 국도에서 한 2리밖에 안 돼요. 그래, '국도를 찾는 사람이 첫날 자는 곳은 아무개 집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10리 안팎으로 해서 거지든,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은 우리집에 다 들어와요. 그래서 사랑방에서는 언제나, 열 명 이상이 밥을 먹고 갔어요. 게다가 여비도 없다고 하면 불쌍하다고 여비까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후덕한 사람입니다. 남자 같은 양반이고 말이에요. 아주 무서운 성격인데 며느리 노릇은 잘 했지요. 시아버지가 명령해서 밥을 새벽부터 해주고 아침에 떠나겠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 가지고 새벽밥을 해 준 거예요.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았어요. 불평도 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내가 어머니의 본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했는데,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거예요. 갈 때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고 편지를 하겠다고 하고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지만 편지는 하나도 안 와요. 그런 것을 보고는 '세상에 돕는 일만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다 비판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고, 내가 열두 살이 됐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로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전부 내 제자예요. '할아버지, 오늘 이러 이러한 일은 안 되겠소. 이렇게 하지요?' 하고, '그거 어떻게 알아?' 하면서 그런 걸 알면 답변하라는 거예요. 그래, 날 무서워했어요.

손자가 됐으면 말이에요, 한국 법이 그렇잖아요? 이름이 있는 집안에서는 아침이 되면 할아버지에게 가서 인사해야지요?「예.」아, 형제들이 다 하는데 내가 꼴래미로 가는 것입니다.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맨 나중에 옷도 안 갈아입고, 세수도 안 하고 들어가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분이 나쁠 것 아니예요? 그러면 할아버지가 정자세를 해 가지고, 담뱃대를 땅땅 두드리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담뱃대가 필요한 때는 땅땅 두드리면 신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다 나와 보고 그랬으니 담뱃대가 필요하다구요. 이래 가지고 인사를 하는데 손자 녀석이 인사 늦었다고 기합을 주겠어요, 안 주겠어요? 줄 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기합을 주면 '예, 옳습니다. 늦게 하면 안 되지요, 빨리 해야지요?' 해 놓고는 그 다음날은 3시가 되기 전에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할아버지가 일찍 올수록 좋다고 안 그랬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사흘, 한 일주일 하니까 '야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예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예요?' 하는 손자가 보통 손자가 아니라는 거든요. 그래, '야, 내가 잘못 생각해서 빨리 오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돼요?' 해 가지고 그 다음 날은 점심때쯤 가는 거예요. (웃음) 그냥 딱,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나였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하라는 것은 다 하게 되어 있고, 형님도 내 말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그 양반은 영계를 통했어요 몸에 우환이 있었지만. 우환을 고치기 위해 약을 안 먹었어요. 기도로 고치겠다고 열성으로 기도했습니다. 열성분자예요. 그래, 해방될 것을 다 알았어요. 동생에 대해서도 한 가지 아는 것은, 세상의 형제들 가운데, 형님이 천하에 꽉 찼고 동생도 많았지만 동생 중 일등 가는 동생이라는 것, 그것만 알고 있었어요.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몰랐어요. 물어봐도 내가 얘기를 안 해 줬습니다. 원리 말씀을 전부 다 그 형님에게 했으면 얼마나 춤을 췄겠어요?. 성경에 미지의 사실이 많은데 한 장, 한 장, 전부 다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돼요. 복을 자기 집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 아시겠어요?「예.」나라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 주는 데는 어디서부터 주어서 올라가야 되느냐? 대번에 나라님서부터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밑창에서부터 주는 것입니다. 그래, 좋고 좋아서 자기보다 나라를 섬길 줄 아는 전통을 남길 수 있게끔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이 그렇습니다. 내가 거쳐간 데는 나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고, 세계를 거쳐갈 수 있는 성인의 도리를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놀음을 해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