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집: 하늘 중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1991년 02월 0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37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종조부- 관한 일"

그때 우리 종조부로 말하면 이승만 박사하고 친구였습니다. 3·1독립선언문을 기안한 다섯 사람 가운데 한 분입니다. 최남선하고 친구고 말이에요. 이 분은 평양신학교를 나왔고, 영어도 잘하고 한학에도 능통한 사람이라구요. 그 할아버지를 보면 잘생겼지요. 이승훈씨가 오산학교를 설립할 때는 배후에서는 우리 할아버지가 같이해 가지고 세운 것입니다. 그래, 정주에서 지금까지 인재들이 많이 나온 것은 이 오산학교가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애국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항일투쟁의 사상적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 환경적 여건을 가졌기 때문에 자유당 때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목사였는데 3·1운동 당시 이북 5도 대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1만세운동 때 원래는 33인 가운데 들어갈 것이었는데, 이명룡씨라는 우리 할아버지 교회의 장로였던 사람이 33인 가운데에 대신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배후를 가졌기 때문에 그때 할아버지가 이박사하고 친구였어요.

옛날에 할아버지가 갑종 요인으로 지목받음으로 말미암아 강원도 경상도의 산악지대에서 살게 됐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시도 잘 짓고 문장력도 있고 한학에 있어서는 알려진 분이기 때문에 정감록을 연구하는 패들, 산악지대에서 때를 중심삼고 연구하는 사람들 기반을 중심삼고 교육하면서 산 것입니다. 결국 일생 동안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신 것이지요. 왜?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 할아버지가 형님-그러니까 우리 친할아버지지요. -이 가진 모든 재산을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이거 여러분이 다 알 것입니다. 동척회사에서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유지들, 재벌들의 땅을 전부 저당 잡아 가지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그 모든 재산을 동척회사에 저당 잡혀 가지고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바쳤습니다. 할아버지가 그걸 책임 맡았거든요. 그래, 목사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요주의 인물이니까 자기 형님 재산을 그렇게 해 가지고 군자금으로 바쳐 놓고는 할 수 없이 야간 도망한 것입니다. 야간 도망할 때는 목사로서 외도하고 도망갔다는 소문을 낸 거예요. 여러분, 그때 기미(期米)라는 게 있었다구요. 요즘의 주권(株券)과 마찬가지예요. 몇 만 석을 사고 팔고 하는 기미를 해 가지고 손해를 봤기 때문에 자기 형님 재산 팔아서 물어 주고 야간 도망했다, 목사가 외도하다가 망쳤다는 소문을 낸 거예요. 그거밖에 길이 없었어요. 이랬으니 고향에서 살 수 없지요.

그래서 피신해 다니다가 감옥 살이도 2년 8개월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갑종 요인으로 어디 가든지 체크당하고 그런 거예요. 그건 또 싫거든요. 그래서 김삿갓 모양으로 산악지대에서 행랑살이 하면서 뜻 있는 사람들을 가르쳐 나온 것입니다. 그래, 강원도 경상도의 산악지대에서 유명한 분이라구요.

해방 이후에는 강원도 정선에 살고 있었는데 이박사가 정선까지 헬리콥터를 보내 가지고 세 번씩이나 모시러 왔었습니다. 그때 우리 종조 할아버지가 뜻을 알았더라면 말이에요, 앞으로 정치가 어떻게 돼야 되고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