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천국은 나로부터(2) 1971년 07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믿음과 실천

실천과 믿음을 두고 볼 때 언제나 믿는 것이 앞서지 실천이 앞설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강해야만 실천도 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 기준과 실천의 기준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실천의 결과를 바라고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실천을 등한히 하고 믿는 것을 위주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엇갈려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항시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 당시 12사도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 또한 그런 신앙을 했습니다. 믿는 것만으로 보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이스라엘나라를 구할 수 있는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믿음의 기준은 그 즉석에서나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싸움을 거쳐서 가정이라든가 종족, 민족으로 나아가야 할 실천과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누구보다도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걸고 맹세하면서 예수를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가 그들 앞에 휘몰아쳤을 때, 그들은 믿던 예수를 통하여 바라던 천국 이념, 전체의 소원을 일시에 포기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과 더불어 실천하여 그런 자리를 극복한 체험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접하였을 때 정작 십자가를 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도 그 고비를 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는 것만을 제일로 하고 믿는 것만으로 전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사도들 앞에 청천벽력과 같은 슬픔의 한날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디까지나 실천을 위한 동기를 마련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할 때 천국은 믿는 데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나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있다는 이 말은 주체적 입장이 상대적 세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내용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동기가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기쁠 수 있는 내용을 결정해 놓지 않고는 아무리 하나님이 기쁘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동기를 가졌다면 상대적 입장에서 나 자신은 기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개척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기뻐하는 주체가 있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는 그 주체도 기뻐하다가 마는 것입니다. 바라다가 마는 것이요, 시작하려다 끝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어떤 한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더라도 상대가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고 슬퍼하는 입장에 있다면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것보다도 슬픈 내용이 더 크게 될 때는, 기뻐할 수 있는 그 주체도 슬퍼하는 상대를 도리어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슬퍼하게 될 때 슬픔의 자리에 들어가서 위로해 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생활 감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주체적 입장이고 우리가 상대적 입장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되면 도리어 슬픔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신앙 기준만을 가지고 천국을 소유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신앙에 대비될 수 있는 실천적 기준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제자를 대해서 반문하신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어려운 죽음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을 알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게 될 때 모두가 저버리고, 전체가 부정하리라는 것을 말하자 베드로 같은 이는 자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가 부정하더라도 자신만은 부정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믿는 마음뿐이었지 실제 행동과는 먼 거리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