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1961년 02월 1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192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걸어 나오신 길을 걸어 하나님의 전통을 세워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아들이라면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하나님을 점령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점령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어디서부터? 타락한 인간이 대번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 붙들겠다고 하면 손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이 자식! 이놈!' 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보라구요.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아, 주님이여! 새벽부터 밤새껏 당신을 찾느라고 허덕였소. 아이고 주님!' 하고 붙들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만지라고 그랬어요? `너는 내가 가는 고난의 길을 몰랐다. 고난의 반열에 동참하지 못한 네가 영광의 자리에서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주를 찾아오려고 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시시한 진리라면 우주를 주관하고 악을 소화할 수 있는 진리가 못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우리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 가지고 그걸 맞출 줄 알아야 돼요. 그럴 거 아니예요? 성경을 봐서 예수가 제일 슬퍼하는 것, 하나님이 제일 슬퍼하는 것, 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걸 가려야 된다구요.

오늘날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니 선생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구요. 이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하나님과 어차피 얽어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얽어맬 때는 이렇게 매어서는 안 되겠단 말이예요, 이렇게. (흉내를 내심) 딱 같아야 돼요. 딱 같아야 된다구요. 통일교인들, 오늘 저녁에 온 청년 남녀들은 이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이제 우리는 뭘 배울 것이냐? 아버지 앞에 내가 하나의 지체가 되고, 한 몸이 되기 위해 얽어매기 위해서는 내가 아버지 걸으신 그 길을 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뭇잎을 똑 따서 조금 떼어 보더라도 그 조그마한 세포는 그 나무의 자격이 있는 거 아니예요? 나무의 토막, 중대를 잘라 놓아도 이것이 오리나무면 오리나무이고 미류나무면 미류나무인 거예요. 이파리를 요만큼 떼어 놓더라도 미류나무는 미류나무란 말이예요. 이런 본질의 자격이 있는 거라구요.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6천 년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아버지 앞에 여러분이 어디서부터 얽어맬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의 몸이 있다 할진대는 6천 년 동안 지내와 가지고 이때에 와 가지고는 기형이 다 되어 가지고 세상 천지를 다 바라볼 수 있게 이 눈만 하나 갖고 있다면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그건 발로 뻥 차야 돼요. 전부 하나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일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지금까지 걸어온 아버지의 슬픔의 고개를 내가 친히 가야 되고, 아버지가 당한 곡절의 기준에 내가 친히 동하여서 거기서부터 내 아들 내 딸이라 할 수 있는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너는 내 딸이니 나와 더불어 가자!' 할 수 있는 결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이것이 지극히 중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와 반드시 얽어매야 되겠습니다. 하나되어야 되겠다구요.

그런데 이것을 어느 길로 얽어매야 되느냐? 오늘날 3천만 민족에게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호화찬란한 곳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같이 잘 입고, 잘 먹고 트림하는 곳에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쌍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을 향하여 양심을 갖고 부딪쳐 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다 처량한 자리에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눈물 어린 자리, 이 민족이 알지 못하는 불쌍한 자리에서 죽음의 길을 향해 생명을 걸어 놓고 뒤넘이치는 무리들이 많을 때, 그런 무리들에게 하나님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을 품은 청년들, 앞으로의 소망을 가진 청년들이 있거든 오늘날 현세에 있어서 어떠한 위정자들을 중심삼은 세력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등살을 대려는 사람들 두고 보라구요, 도망 안 가나. 그런 걸 잊어버리고 `내가 가진 학벌, 내가 갖춘 모든 인격을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나타나게 해주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요한 농촌에 들어가 가지고 땅을 파면서, 피와 눈물을 흘리면서, 불쌍한 농민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고 농부들의 사정을 알아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있어서 그들을 붙들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호소하면서 그들의 생명과 그들의 전체적인 생애를 내 몸뚱이에 얽어매어 가지고 그들이 나갈 길, 그들이 소망하는 곳을 항하여 개척하며 가겠다는 마음을 갖고 싸우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역사를 찾아보든지 그 나라의 애국자, 혹은 그 나라의 충신 열녀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반드시 그 시대에 있어서 줄곧 행락을 노래하는 자리에서 떨어져 가지고 비참한 자리에서 불쌍한 이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공인된 가치가 역사적인 전체에 비교해 보게 될 때 손색이 없고, 시대와 미래를 거치게 될 때 엄연하게 찬란히 빛날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지게 될 때 그것이 한 애국정신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이 그것을 본받고 따라가게끔 기도하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역사상의 철칙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오늘날 이 지상에는 하나님의 전통이 서 있지 않습니다. 성경 66권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많아요. 교회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그들은 다 가짜들입니다. 자기가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요, 너는 내 종이다'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죽음의 자리에 있어서 시체를 거두어 줄 수 있는 종, 눈물 어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목을 안고 울어 줄 수 있는 종, 또 그러한 아들딸은 없다구요.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이 여기 모여진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외롭고 슬픈 자리에서 고통받으며 나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눈물의 고비를 내 일신에 얽어맬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가 눈물 흘릴 때 동반자가 되고, 고통을 당할 때 동반자가 되고, 슬플 때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길에서부터 여러분들이 주체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여러분이 하나의 연결체가 되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