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집: 새로운 전진 1981년 05월 17일, 한국 본부교회 Page #73 Search Speeches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출발한 통일교회

이제 통일교회는 새로운 차원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은 수난길이었습니다. 그것은 민족과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통일교회와 하나되지 못한 연고로 수난길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냐? 기성교회를 하나 만들고 나라와 하나되어 가지고 자유세계와 연결시켜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성을 띤 책임을 짊어졌습니다. 그건 마치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그때 세계의 중심인 로마제국,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 외적 세계에 있어서 중심국가인 로마제국을 소화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인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약 로마가 반대했더라면 인도라든가 중국이 이스라엘과 자연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문화세계를 중심삼고볼 때에, 동쪽에는 중국문화와 인도문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중동지역에 예수를 보내 가지고 인도와 연결짓고 중국과 연결짓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로마가 만약에 순응하지 않았더라면 자동적으로 동서분립된 입장에서 동으로부터 하나되어 가지고 로마를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요즘 세계로 말하면 민주세계와 자유세계의 형태를 갖추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 재현 형태가 오늘날 끝날 시대에 나타난 것이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그런데 한국을 중심삼고 보면,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한국이 왜정하에서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독립국가형태에 들어왔다는 것은, 자유세계의 헙조로 말미암아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탄압을 받았던 기독교가 자유세계의 추대를 받아 가지고 자주적인 국가형태와 더불어 새로운 신앙의 자립과 새로운 희망과 혁명의 기치를 받들어 가지고 하늘의 나라로서, 하늘의 뜻을 받드는 데 있어서 첨단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를 하나의 시대적인 변천기로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기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이 기반 위에…. 새로이 변혁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만약에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그때서부터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해방 후 3년 기간을 거쳐 가지고 1948년에 독립된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았으면 위대한 역사적 통합운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 국가와 민족 앞에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사상적인 면에서나 신앙적인 면에서 이 민족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고, 본받지 않을 수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종교인들이 말하기를 종교를 믿는다면 통일교회와 같이 믿고 행동해야 된다고 합니다. 또, 국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반공이념을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통일교회는 남한에 있어서 뺄 수 없는 역사적인 하나의 그 무엇을 남겨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방 후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소모해 가지고 이와 같은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교회의 기반이 정비돼 가지고…. 완전히 체제를 갖춘 가운데 반대를 받으면서 이만큼 발전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해방 직후는 교회도 혼란기였습니다. 신사참배를 하던 교인들과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신자들이 나와 가지고 서로…. 원래는 옥중에 있던 사람들을 중심삼고 기성교회가 수습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어떤 관점에 있느냐? 재림주가 한국에 재림한다는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 신령한 집단들이 옥중에서 나온 사람들과 더불어 혁신적인 터전 위에서 새로운 기독교 환경을 이루어 가지고, 그 가운데 통일교회가 출발했더라면 기독교는 7년도 안 가서 3년, 3년 반만에 국가기준의 결정을 보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때는 기독교의 혼란기였습니다. 기독교가 자리잡지 못하고 새로운 조류로 말미암아 충돌하던 때였습니다. 거기에 하나의 핵의 사명을 해야할 것이, 이제 와 보니 통일교회가 돼야 했었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국가를 보더라도 혼란기였습니다, 이 혼란기를 통해서 미군정이 들어왔습니다. 군정시대라는 것은 한국 사람을 세워 놓고 한국 사람의 주장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가야 될 텐데…. 만약에 기독교가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통일교회와 같은 세계관을 갖춘 자리에서 움직였더라면 하지 장군을 중심삼고 미국 전체 앞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방향으로 차고 나갔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역사과정을 지내 가지고 오늘날에 와서 말함으로 말미암아 믿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다는 거예요. 그때는 그 누구도 믿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러한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통일교회는 출발했는데 그 와중에서도 기성교회의 반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자유당 창당 당시에 선생님이 거기에 한 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반과 더불어 교회와 연결하는 이런 기미를 알고 목사들이 반대함으로 결렬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 운명길은 수난길을 출발하게 됐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