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 1967년 12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2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갈망

예수님은 이 땅 위의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왔지만, 만민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천적인 수속 절차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몰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메시아로서의 입장을 완료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만민을 대속하기 위하여 만민의 대표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표의 자리에서 사탄을 완전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그런 천적인 수속을 밟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위치에서 가야 하는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심각하고 처량했겠습니까 ?

4천년 이스라엘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신 수고와 역대 이스라엘 민족이 했던 수고도 컸지만, 그보다도 그것을 총합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하고 새로운 천지, 새로운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주인공으로 오신 예수님이 새로운 출발은커녕 십자가의 길에 쓰러져야 했던 이 억울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늘 앞에 특별히 선 종족, 즉 다윗 종족은 아벨적인 입장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섭리적으로 볼 때, 이 아벨적인 다윗 종족 앞에 가인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중심삼고 이 땅에서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비로소 예수님 앞에 승리적인 기반의 민족적 기대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한 다윗 족속 일파와 예수님이 일체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실체기대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실체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지 않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교법사들, 유대교단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에 가인적인 이스라엘 형(型)은 근본적으로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권으로 들어가게 되어 사탄은 아벨의 입장인 종족에 대해서 직접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족적인 터전을 잃어버린 예수는 민족의 핍박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져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결국 십자가에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어떻게든 모면해 보려고 열 두제자들을 붙들고 애걸복걸하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까지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모두를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중 이 땅에서 최후까지 믿을 수 있는 세 사람만을 택해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 하늘이 깨지느냐 땅이 깨지느냐 하는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듯 중대한 문제를 걸어 놓고 담판짓는 그 시간에도 그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을 자고 있었다는 거예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자리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과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갈망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