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1963년 03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7 Search Speeches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을 찾아 나온 복귀섭리의 길"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하나님이 그와 같이 택한 백성들을 그런 시련도상에서 이끌어 나온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닦아 나오던 그런 전체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이 상속을 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진대,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에 있어서 그 민족이 당하던 이상의 시련을 당해야 되는 거예요. 민족으로서의 주권이 없는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가 하는 그러한 심정까지도 오늘날에 상속받는 무리들은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 고충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울부짖으며 '우리를 위한 주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문화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경제력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사회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백성과 우리를 위한 국토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호소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뼛골에 사무치게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처박아 놓은 거예요.

그러한 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의 민족을 위하고 자기의 주권과 자기의 고국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떤 어려운 도상에서도 참고 하나의 소망의 주권을 찾고, 하나의 소망의 민족, 소망의 국토를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어려움을 제껴 놓고 참고, 시련도상을 참아 한 때에 그런 목적의 길이 열리게 될 때에 그것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서 달려가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만이 자기의 소원이라며 움직여 갔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삼천만 민족을 대신해 나가 싸워라 이거예요. 네 자신과 네 가정을 위하여 네 종족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싸워라!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하여 나가 싸워라!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 우리의 배후에는 원수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가는 길에는 글자 그대로 처참한 사실이 많았어요. 비참한, 말할 수 없는 고충의 자리에 있어서 우리들은 혀를 깨물어 가면서, 혹은 복받쳐 오르는 울분심을 제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분하더라도 뼈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시련도상에 서게 될 때 그것은 거기에서 응당 받아 넘겨야 할 것으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그 부딪치는 시련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서 되살아나서 살이 되어야 할 것은….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을 위한, 최고의 선을 위한 이 지향의 마음만은 자라야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채찍이 가해 오면 그 채찍은 후대에, 영원한 이념적인 그런 세계가 올 때에 그 세계를 길이 빛낼 수 있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활환경이 쪼들리면 쪼들릴수록, 내 환경이 급박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이념을 중심삼은 내적인 사람으로서 뼈다귀가 굵어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분함을 참는 것도, 억울함을 참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울분지심을 억제하는 것도 단 하나 무엇이냐? 우리가 그런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예요.

하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지금까지 도탄 중에 쓸어 넣었는데 왜? 그런 고통 가운데 넘겨 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때를 갖지 못하였으니 때를 마련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때를 마련할 것이냐? 칼을 가지고 때를 마련했다가는 칼로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은 이 때를 마련하고 이 때를 맞기 위해서 무엇으로? 시련과 고통으로 때를 개척해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어요.

즉, 선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요건이 무엇이냐? 선을 세울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이뇨? 그를 위하여 참소하지 못하고 긍정할 수 있 는 요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그런데 그 요건은 무엇으로만 세울 수 있느냐? 편안한 자리에 있어서? 고통의 자리에서만이. 대중을 위하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 대중이 공인할 수 있는 것이 천칙(天則)이 되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울면서도 이 길을 붙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길에 있어서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을 찾아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이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때가 오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뼈 없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산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놀음을 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있는 거예요. 40여 평생의 울분! 죽지 않았다 이거예요. 6천 년의 울분! 아버지, 우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서 낙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어려움을 한 때에 있어서 원수를 향하여 악을 차단할 수 있는 재료로 삼아 자연적인 환경으로 남겨질 수 있는 여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