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집: 복귀의 정상 1974년 02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4 Search Speeches

완전 희생의 길을 가야만 정상의 기준- 다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원리적인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완성할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지도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중심적인 자리를 말하는데, 과연 완성이라는 그 기준을 현실시대에 있어서 우리의 세계적인 전체 무대를 중심삼고 이룰 수 있는 책임을 나 스스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도 이것을 지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희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내려가는 것을 어떻게 방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희생하더라도 중심만 서 있으면 상대적 요건을 실체로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마음으로라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은 중심을 중심삼고 재창조의 역사를 하시는데 그 역사가 복귀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을 재창조하고, 그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와를 재창조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재창조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에게 재창조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그 재료가 자기의 무엇을 주장하는 재료가 돼 가지고는 창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원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원소들은 주인의 계획도(計劃圖)에 의해 가지고 좌(左) 하면 좌에 머물고, 우(右) 하면 우에 머물고, 앞으로 혹은 뒤로, 그 주체가 움직이는 데 따라 움직이는 대상적인 실체로 머물 뿐이지, 거기에 자기 스스로가 대상의 입장에서 뭘 주장하고 나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반드시 여기에서는 피조물, 지음받아야 할 재료로서의 입장에 서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그 무엇 가지고는 그 주체의 대상적 존재로서 완전히 지어지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여기 갖다 세워 놓으면 이건 반드시 자기 주장하고, 이동하고, 방향이 달라지든가 무엇이 달라지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완전히 대상적인 실체로서의 완성이라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자기 자체를 희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자기 전체를 무(無)로 돌리는 여기에서 주체자의 의도에 언제나 하나될 수 있게 될 때, 자기 스스로가 재차 지음받을 수 있는, 재차 커 갈 수 있는, 어떤 목적을 향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이 길에 있어서도 역시 희생을 촉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희생을 하는 데도 완전 희생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완전 희생을 하면 완전 정상의 기준을…. 그 주체가 틀림없는 한 완전 희생하는 그 입장에서 나가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 주체를 통해서 완전 희생을 한 대상의 존재 앞에 힘을 가해 가지고 상대적 존재로 창조해 나갈 것입니다. 그 역사를 해 나간다면 이것은 필시 그 주체 앞에 하나의 대상적인 존재로서의 정상의 길을 가고 있는 존재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오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 가지고 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방대하냐? 얼마나 방대하냐 이거예요. 여러분 통일교회 식구들, 혹은 축복받은 가정들 자체를 생각하게 될 때, 축복받았을 때와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고 난 후가 어떻게 다르냐?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느낀다 이거예요. 우리의 느끼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생활 태도에 있어서 거기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가지고 '나는 하나님이 바랄 수 있는 절대적인 상대자의 위치에 섰다. 결정적이다' 하는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때, 이 복귀노정에 남아 있는 우리는 희생의 길이 하나의 모토로서 남아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것을 알려면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보라는 거예요, 기도. 그런가 안그런가 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를 해보면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 하게 될 때, 그 희생의 반대적인 입장에서 극난(克難)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면 그 극난한 상황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것을 감사하면서 기도해야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같이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거기에서 자기 주장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자기만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자리에, 희생하는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을 붙안고 그 전체의 주체자를 위해서 나는 간다하는 일념만을 가지고 나가게 될 때는, 여기에는 위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