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집: 정도 1982년 10월 2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13 Search Speeches

참다운 남녀의 사'이 합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은 자-히 임해

여기 있는 아저씨들도 이 주사 한 방만 맞아 놓으면 갈 데가 없어요. 차 버려도 저리 갔다가, 낮에 갔다가 밤이면 오는 거예요. 그 사랑의 맛을 보고 나서는 갈 데가 없는 거예요. 통일교회 믿던 사람들이 나가면 갈 데가 없습니다.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또 들어오는 거예요. 요전에 뉴스 월드에 있던 사람이 3, 4년 전에 나갔다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할 수 없으니 또 들어왔어요. 새출발할 테니 용서해 달라는 거예요. 나보고 보고하기에 '이놈의 자식, 한번 밟아 치워라!' 했어요. 그래도 죽지 않거든 놔 두라고 그랬지만 말이예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참사랑, 사랑을 중심삼고 참개인을 위한 사랑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참사랑을 가진 남자, 참사랑을 가진 여자…. 이게 문제예요. 거기에는 하나님이 있게 마련이예요. 그런 참남자 참여자가 합하는 사랑은 우주의 동력을 합한 종합지예요. 그래서 남자 여자의 결합은 위대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가 조상이 되느냐? 아담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고, 해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는 거예요.

여러분, 원리를 배웠지요? 아담은 무엇이고 해와는 무엇이냐?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예요.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지요? 너희들의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을 모르느냐고. 성전은 뭐예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지요. 우리 마음에 본연의 사랑이 싹트는 그 자리를 지성소로 삼는 거예요. 그래서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우주적인 사랑의 성전을 짓고 사랑의 힘을 뻗어 가지고 사랑의 꽃을 피우려 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가정과 세계에 번식하라고 축복해 준 목적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게 했으면 되었을 텐데 이것이 틀어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바로잡아야 돼요. 보라구요. 여러분 무너진 기둥 하나 바로잡기 위해서 집을 수리하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들지요? 아시겠어요? 「예」 그것도 힘이 드는데, 저끄러진 사랑의 길을 바로잡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이것을 알게 될 때는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라 하는 거예요.

구원섭리는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쉬운 길이 아니예요.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 년이 뭐예요? 인류역사 80만 년을 잡고 있는데 말이예요. 수십만 년 역사를 인간 뒤를 배회하면서 찾아오던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 그게 누구냐 하면 아버지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남편이예요. 그게 누구냐 하면 아내예요.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말이예요, 아담과 한몸이예요. 해와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부인이다 이거예요.

이분이 천상세계의 무형…. 저나라에 가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하지만 이 우주 가운데 체를 지었기 때문에, 두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왕좌를 영계에 꾸며 놓고 체를 가진 하나님의 행세를 하기 위해서 실체세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성숙해 가지고 결혼식을 하는 날에는, 이 둘이 수평선으로 합하게 되면 수직선은 자연히 오게 마련이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자연히 임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참다운 남자의 사랑과 참다운 본연의 여자의 사랑이 하나로 합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히 임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몸과 마음, 여자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남자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이 둘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돼요. 그런 진정한 사랑권 내에서 태어나는 애기는 하나님이 임재한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의 동참자인 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에게 부모가 있지요? 그 부모를 왜 귀히 여겨야 되느냐 하면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동참자. '나'라는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의 사랑이 연결된 동참자예요. 하나님과 수직으로 아랫부분으로 연결되는 동참자예요. 4대 사랑의 생명을 중심삼은 4대 사랑으로부터 3대의 사랑이 결합되는 거기에 있어서, 나를 중심삼고 생명으로 생겨나는 것은 뭐냐? 4대 사랑권의 종적인 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자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무시하고 욕할 수 없는 것은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내와 같이, 자기 남편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은 왜 부모를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왜 섬겨야 되느냐? 이것도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요, 불변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만이 전체를 완성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엄숙히 화합하는 것이 존재세계의 소원의 기준이기 때문에, 남녀를 막론하고 사랑의 질서에 순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