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집: 통일의 조수 1989년 10월 2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54 Search Speeches

지·정·의와 진·미·선을 갖춘 근원적 모체와 관계 맺고 살아야

이렇게 볼 때, 우주에는 우리 조상이 있기 전에 진·미·선이라든가 지·정·의의 내용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 모체가 있었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샘줄기가 터지면 샘이 나오는 거와 같이, 그 줄기가 터지기 때문에 그런 작용이 나와 가지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인간 시조가 있기 전에 그런 것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이 있기 전부터 그런 것이 있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이 무엇이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제2의 결과적 존재예요. 원인적 존재가 아니예요. 결과적 존재예요. 그래, 원인적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정·의를 갖추고 진·미·선을 갖춘 근원적인 무엇이 있어야 된다, 여기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분은, 그러한 존재는 무형의 허깨비가 아니고 인격적인 신이어야 한다, 인격적인 신이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런 인격적인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중심삼고 무엇이 연결돼야 되느냐? 여러분, 하나님 하게 되면 높은 걸 말하잖아요? 거기에 내 몸뚱이가 연결될 것이냐? 마음이 연결되는 거예요. 인격적인 신 되시는, 제1 원인이신 존재,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게 수직과 같은, 인생이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의 수직과 같은 마음을 중심삼고, 지구성이 태양계를 중심삼고 그 각도를 맞추고 축을 이뤄 가지고 공전하면서 하루 이틀, 365일을 도는 거와 마찬가지로 돌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이 모든 세포도 마찬가지예요. 세포가 수백억, 4백조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세포들도 제멋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나'라는, 레버런 문이라는 인격체가 있으면 그 인격체를 중심삼고 마음 방향이 딱 수직이 되어 있으면, 이 세포들도 이 수직을 중심삼고 원형으로 돌려고 한다는 거예요, 전부 다. 왜 원형을 따라서 돌려고 하느냐? 돌아오는 길이 없으면 작용하면 할수록 자꾸 소모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모를 피하려니 모든 물건들은 원형을 따라가는 거예요. 원형을 따라가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차바퀴는 동그란 것인데 아무리 빨리 가도 소리가 안 납니다. 그렇지만 나무 같은 것을 중심삼고 돌려 봐요.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소리가 나는 데 비례해서 거기에는 소모가 벌어지고 부하(負荷)가 걸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본이 되는 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은 어떠한 존재냐? 신이 있다면 그 신도 인격적이고 우리의 동기가 되는 존재니만큼 그 과정적 내용에 있어서의 길이 동으로 통했든가 서로 통했든가 남으로 통하든가, 북으로 통하든가 방향은 다르지만 시작한 점과 끝에 가서 맺혀지는 점은 전부 다 같아 가지고, 그 결과는 반드시 돌아와 처음과 연결되지 않고는 영존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그 하나님은 독자적으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돌아와 가지고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돌아와 가지고 살기 때문에 돌아와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구형이 되어야 합니다. 구형을 중심삼고 잘라 보면 말이예요, 축은 하나지만 축 하나를 중심삼고 동서남북이 있는 것입니다. 축 하나를 두고 360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 360도는 어떻게 돼서 그런 것이냐? 축을 중심삼고 이렇게, 360도가 언제나 이렇게 돼요. 어디까지나 축을 중심삼고, 수평선을 중심삼고 360도를 그려 가는 것이 구형 형성에 있어서 이상적 위치 결정입니다. 종횡의 위치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종횡은 어디를 중심삼고 결합하느냐? 외적인 기반이 아니고, 이 구형이 있으면 구형 자체의 여기가 아니고, 반드시 중앙의 핵이 되는 거예요, 핵. 모든 전체는 핵이 있고 부체(附體)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중심을 중심삼고 360도의 모든 구형은 전부 다 연결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이것이 연결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이 축이…. 볼 같은 것을 보게 되면 말이예요, 볼을 차게 되면 돌아갈 때는 축을 잃어버리지만, 볼이 설 때는 반드시 지축을 중심삼은 축을 따라 서게 된다는 거예요. 땅이 이렇게 있으면 볼도 이렇게 서기 때문에 그 구형의 모든 표면은 축의 자리를 언제나 연결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 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그 표면적 기준인 나도 축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대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논리를 펼 수 있는 거예요.

이 대한민국 백성,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하나의 볼과 같이 돼 있으면 나도 그 표면의 한 사람인데, 나 한 사람도 설 때에 나를 중심삼고 섰다 할 때는 나를 중심삼고 축이 되는 거예요. 이러한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대등한 자리에…. 대등하다는 것은 같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는 크지만 큰 걸 중심삼고 요와 같은 작은 모양이 안팎으로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나이도 많고 모든 점에서 경험이 많지만 손자는 그 할아버지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 갖고? 사랑이라는 것을 갖고. 안 그래요? 뭣 갖고 대등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