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집: 기독교의 새로운 장래 1974년 03월 10일, 미국 버밍햄 Page #313 Search Speeches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과 기독교의 사명

그러면 인류의 조상 되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떠한 세계가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아 이들이 완성됐더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불러다가 축복을, 결혼식을 해줬을 것입니다. 그건 그래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를 지었다는 거예요.

만일 그렇게 됐다면 이 지구성에는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죄 없는 완성한 참된 인류의 조상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 참부모가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신랑과 참된 신부가 이 땅 위에 탄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서로가 원수 되는 형제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협조하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참다운 형제가 이 땅 위에 생겨 났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지구성에 가정을 형성하여 죄 없는 부모로서 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죄 없는 씨족, 죄없는 민족, 죄없는 국가, 죄 없는 세계를 이루어, 명실 공히 이 지구성 인류는 하나님의 주관을 받고 하나님은 이 지구성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구주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으며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구주가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한 것은 타락의 선물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거예요.

구원한다는 것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병이 났기 때문에 병자를 고치는 병원이 필요하고,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하는 공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이냐? 수리공장과 마찬가지요, 병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다 구원이라구요. 병이 났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런 원칙적인 기준을 오늘날 기독교는 규정 왜 놓지 않고 막연히, 덮어 놓고 믿으니…. 그거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자구요. 요한복음 12장 31절에 보게 되면 '이 세상 임금은 사탄 마귀'라고 했어요. 왜 악한 사탄 마귀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류의 왕이 될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인류가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탄과는 원수라구요.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타락된, 죄 있는 인류의 조상을 맞이했다는 거예요. 반대라구요. 반대예요.

그 다음에는 거짓된 부부가 성립됐다 이거예요. 그 다음에는 서로 죽이는 거짓된 형제가 성립됐어요.

부부가 죄 있는 아들딸을 낳아서, 죄 있는 가정으로부터 죄 있는 종족, 죄 있는 민족, 죄 있는 세계로 벌어져 나간 거예요.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사탄마귀가 왕이 안 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러한 세상에서 죄 없는 세상으로 옮겨야 되는데, 이것이 구원입니다. 옮긴다는 것은 구원인데, 곧 복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본래 하나님의 뜻이 구원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본래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메시아가 오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사탄 마귀 세상의 사람을 다 자기한테로 구해 내는 것이요, 나중에는 사탄 마귀를 추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데에는 죄만 지으면 참소를 하는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이걸 추방해야 된다구요. 오늘날 기독교는 가야 할 목적이 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나 하나 구원받고, 천당가겠다' 하는 그런 시시한 구원이 아니라구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인류를 망치고 인류를 유린하는 사탄 마귀를 이 지구성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몰랐다 이거예요.

그런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메시아를 그냥 개인적으로 사탄에게 보내면 사탄이 다 잡아 죽인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 하나의 국가형태를 마련해 놓고, 그 국가 국민이 하나된 가운데서 세계를 요리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것을 준비해야 할 유대교요, 선민이었다는 것을 유대교 신자는 몰랐다는 거예요.

그것의 연장으로 세계적인 주님이 다시 올 때에도 그 뜻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세계적 끝날에 오게 될 때에 그 뜻을 확대해 가지고 세계적 발판을 만들어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