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집: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은 가정 1990년 11월 27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67 Search Speeches

순리적인 통일의 길을 걸어 나오지 못한 통일교회

그러면 `통일교회'라는 이 교회가 세계 기독교만 통일하자는 것이냐? `교회(敎會)' 하게 되면 그것은 `가르치는 곳'이지만, `종교(宗敎)' 하게 된다면―기독교도 종교라고 하는데―종교라는 말은 `마루 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거예요. 그럼 기독교를 통일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를 통일해 가지고 뭘하자는 것이냐? 기독교를 통일한 후에는 수많은 종교를 통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는 소원도 절대적인 것이니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바라는 완전한 것은 전부 다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소원 가운데 기독교를 통일하고는 그 나머지의 모든 종교들은 폐품같이 쓸어 버릴 것이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계를 구하겠다는 그 구원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겠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통일하고 나서 그다음에는 그 주변에 있는 종교, 기독교가 주류 종교라면 방계적 종교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만약에 종교권을 통일했다 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믿기를 `끝날에 천년왕국시대가 오면 주님이 옴으로 말미암아 공중에 들려 올라가 천년왕궁에서 왕 노릇 한다!' 이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하나님일 것이냐 이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우주를 구원하는 섭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이 지구성뿐만이 아니라 우주까지도 구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냐?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 이 지구성에 인간으로 살다 간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있다면 지옥에 있는 사람까지도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를 통일한 후에는,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이요, 진정한 사랑과 자비를 가지신 주체라면 기필코 이 세계를 하나 만들어서 구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난 후에야 하나의 교회로 통일되는 것도 소망적인 것입니다.

암만 이 교회가 통일되었다 하더라도 교파가 통일될 수 있는 길이 절대 없다 할 때는 그 통일된 교회는 영원히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악마의 포위권 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음과 고통의 환경을 모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와 같은 하나의 교파가, 하나의 교회뿐만 아니라 교파가 아무리 통일되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종교가 하나될 수 없다 하게 될 때는 그 교파도 비참한 교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40여 년 동안 여기 선 사람을 장본인으로 해 가지고 세계적인 판도를 닦으면서 수많은 핍박을 받게 된 것도 통일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외부의 사람, 통일교회 외의 수많은 종교들이 `우리는 통일을 바란다' 해 가지고 실제로 통일되었더라면 통일교회를 환영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모든 종교권 내, 혹은 모든 외부의 세력기반, 위정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은 것은, 그 외적 세계가 통일교회가 바라는 내용과 달라서 통일교회의 그 통일된 환경 여건이 점점 커 감으로서 외적 세계와 반대의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는 불가피적으로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이 순리적인 통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순리적인 통일이 아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순리적인 통일을 추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우리 사람을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 하더라도 일생 동안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산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몸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어 가지고 `천하의 통일된 모델을, 그 본연의 형태를 찾으려면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있는 성인들이 있었을까요?

공자님은 어떠했을까요? 공자님은 마음과 몸이 싸웠겠어요, 안 싸웠겠어요? 우리가 보편적 대답을 한다면 안 싸웠겠소, 싸웠겠소? 「싸웠습니다」 공자님 되어 봤어요? (웃음) 돼 보지는 않았지만 천년만년을 두고 보더라도 인간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 조상이 싸울 수 있는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혈통의 계대를 이어 가지고 오늘의 내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니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선조들도 나와 같음에 틀림없다 하는 것은 보편적 결론이니 공자가 되어 보지 않았지만 공자님도 몸과 마음이 하나 못 되고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석가님은 어때요? 불교 믿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양반들도 많지요? 석가모니는 어때요? 석가모니는 안 싸웠겠지! 안 싸웠을 것 같아요? (웃음) 웃는 것 보니까 석가모니도 그럴 성싶구만요. 더 나아가서 기독교 신자, 통일교회도 기독교의 일파지만 말이예요, 기독교 신자들 중심삼고 `예수님은 몸 마음이 싸웠겠소, 안 싸웠겠소? ' 하고 물어 보면 어떨까요? 어때요? 「싸웠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싸웠다' 할 때는 무엇을 중심삼고, 무엇 때문에 싸웠느냐 이겁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싸웠느냐 하고 묻게 될 때, 하나되려는 데 있어서 하나가 못 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싸웠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더라면 싸우지 않았을 텐데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영원한 인격 기준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무엇인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싸웠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과제는 성인들로부터 오늘날 수많은 인류에게 남겨진 굉장한 숙제입니다.

자, 그만했으면 통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겠지요? 시간이 벌써 20분 되었네. 뭐 목사님이 20분만 설교하면 되지. 안 그래요? (웃음) 그만하고 말까요? 「아닙니다」 누구 마음대로 아니예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