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1958년 12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5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반겨줄 수 있" 인간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입니까? 6천년을 대표하는 제물입니다. 따라서 6천년을 대표하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6천년 동안 인간으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날 때 어떠했던가. 그들은 쫓겨나는 자신을 두고 슬퍼하였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눈물의 기원(起源)이 되었고 고통과 질고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그런 아담 해와 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쫓아내면서 쫓겨나는 그들의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의 심정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인간들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쫓겨난 종족이요, 그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쫓겨나 있는 인간을 보고 오늘도 슬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중심삼고 하늘을 배반하여 쫓겨났던 인간은 어떻게 해야 복귀되는가? 내 슬픔이야 있거나 말거나, 내 억울함이나 내 사망이야 있거나 없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과 억울함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회개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통곡하라는 거예요. 즉 울음으로 출발한 역사의 기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의 슬픔을 가지고 울어서는 안 됩니다. 사망선에 떨어진 인간을 6천년 동안 품어 주시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울어 주고 고통으로 슬퍼해 오신 하나님을 붙들고 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냐 네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이 반겨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때문에 슬퍼하시고 억울함을 당하시고 고통당하셨던 모든 것을 탕감하고 해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누구입니까? 인류의 참아버지입니다. 4천년만에 하나님 대신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땅 위에 오신 분입니다. 4천년 동안 불쌍하게 허덕인 인류와 상봉하여 하나님 대신 그들을 붙안고 사랑하기 위하여 오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인간은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이고 보니 자기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죽이고 나서야 자기의 참아버지인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참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를 죽였을 망정 그가 진실로 자기 아버지인 줄을 알게 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당, 살인 강도라 할지라도, 목석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서글픔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4천년 동안 고생한 부모의 서글픈 심정을 모르는 인간들로 하여금 통곡하게 하는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난 자는 통곡하여야 됩니다. 통곡하더라도 예수가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참부모로 오셨는데, 그 예수를 죽인 것을 놓고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통곡하고 , 오셨던 참부모를 위하여 통곡하고, 나아가 땅의 인류를 위하여 통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한 성도들은 어떠한 통곡을 해야 할 것인가. 나를 위하여 통곡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통곡할 때도 지났습니다. 이제 세계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성부, 성자, 성신을 위하여 통곡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한 전체의 세계를 주관하는 이념권내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죽인 인간들이지만 예수가 참부모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참부모를 잃어버린 서러움과 원통함을 느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본성이 인간에게 있었던 연고로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재림주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 재림주님을 맞이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도 같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즉 역사적인 눈물을 대신 흘리고, 시대를 대표하여 대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살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슬픔의 눈물은 흘렸지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한날을 인간들은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재림의 날이고, 잃어버린 참부모를 찾는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