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집: 축복의 의의와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 1992년 08월 27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308 Search Speeches

아담과 해와의 창조본-의 관계

(판서하시며) 아담은 첫째, 아들의 사명을 해야 돼요. 둘째는 오빠의 사명을 해야 됩니다. 해와는 딸의 사명을 해야 되고 누이동생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아들의 심정권과 오빠의 심정권을 가져야 됩니다. 셋째는 뭐냐? 아담은 신랑의 사명을 해야 됩니다. 해와는 신부의 사명을 해야 돼요.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속에 있는 신랑의 심정을 완성했어요?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신랑은 이래야 된다. ' 하는 모델의 근본이 될 수 있는 마음과 딱 하나되어서 '좋다, 됐다!' 할 수 있는 신랑의 심정권을 아담이 완성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지요?

넷째 번은 뭐냐? 부모권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바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랑 신부가 마음에 꼭 맞게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해서 완전히 피살이 동화되어 섞어지게 될 때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이 간절히 사랑으로 화합되어 가지고 주체적 성상을 갖춘 가운데 아담 해와는 완전히 하나되어서 하나님 앞에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실체 대상의 자리에서 마이너스가 되어야 돼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날 때는 아들이었고 딸이었습니다. 이 때는 대상적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상 형상을 최대한도로 확대시킨 것입니다. 위에서부터 최하로 수직선으로 갈라 놓은 것입니다. 멀리 갈라 놓을수록 큰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극이 멀수록 점령하는 면적이 넓어지고 이루어진 구형체가 커지는 것입니다.

수직이 이렇다면 수직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수직에는 번식이 없습니다. 수직의 축은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번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번식하려니까 대이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평을 찾아가야 돼요.

그러면 남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남자가 종적인 수직이면 횡적으로 제일 먼 거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하고 이것하고는 같은 거리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은 동쪽, 해와는 서쪽입니다. 아담이 가는 목적은 이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가고, 국민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고, 박사코스로 간다구요.

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빠,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갈라져 가지고 이렇게 찾아가면서 커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해와는 해와대로 성숙해야 되고, 아담은 아담대로 성숙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갈라져서 어떻게 되느냐? 집을 나가 가지고 자연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동물을 좋아하고, 새를 좋아하고, 곤충을 좋아하잖아요? 딱 그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담 해와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놀고 싶고, 알고 싶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서남북으로 구형체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를 중심삼고 전부 도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커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커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크다 보니 세상만사를 다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보니까 '내가 가야 할 곳은 다르다. 남자가 이렇게 돌아다녀야 될 게 아니구나!' 해 가지고 해와가 자기 상대인 것을 알게 된다구요. 왜? 에덴동산에 둘밖에 없으니까. 안 그래요?

해와도 커 보니까 '여기에 와서 혼자 있을 것이 아니다. 오빠를 찾아가야 되겠다. '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오빠고, 해와는 누이동생입니다. 해와가 철들고, 생리가 벌어지고 하니까 남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그런 것입니다. 자연히 그렇지요? 그런 것입니다. 괜히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좋고, 혼자 떨어지면 적적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모든 만물이 커서 봄절기가 되면 쌍쌍이 다 되니 아담 해와도 '우리도 저래야 될 텐데, 내 상대가 누구냐? '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아담의 상대는 해와고 해와의 상대는 아담입니다. 그건 자연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박물관을 바라보게 될 때, 사람도 이렇게 산다는 것을 전부 알게 되어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