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하늘은 우리들을 부르고 계신다 1958년 01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2 Search Speeches

예수가 걸은 길과 유대민족이 걸은 길

이스라엘민족으로부터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 앞에는 눈물의 골짜기, 십자가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배척받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과 유대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이스라엘민족과 유대나라로부터 이단자 취급을 받아 추방당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듬어 보게 될 때, 그분의 가는 길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민족을 위한 길이었고, 그 종족을 위한 길이었으나, 당시 이스라엘민족이 가는 길과 예수님의 가는 길이 상반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반된 사이가 넓으면 넓을수록 하나님의 슬픔이 컸고 울분도 더하였던 것입니다. 이 상반(相反)된 길을 다시 상대적인 길로 전환시키기 위해 투쟁의 역사를 전개해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 2000년간의 신앙노정 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 한 자체를 온 피조만상(被造萬象) 가운데 세워놓고 마음 몸을 따로따로 떼어 그들과 견주어보면서 비판하여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역사적인 선지 성현들 앞에, 또 오늘날 눈물을 머금고 슬픔과 고통의 길을 참아나가는 참다운 목자들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여러분 스스로가 자랑하고 나설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죄의 보응을 받아 마땅한 자체인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역사적인 피눈물의 제단을 거쳐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 제단 위에 여러분 자체를 올려놓고 승리의 결실체로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그 뜻을 배척한다면 그 민족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택함받은 아브라함을 반대했던 그 종족이 어디로 갔습니까?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서글픈 심정을 느끼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도탄 중에서 허덕여야 했고 슬픔과 탄식속에 빠져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세 때에는 어떠하였습니까?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민족을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던 모세의 서글픈 심정과 그 애타는 마음을 무지한 백성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민족이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 같이 안타까와했던들 이스라엘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역사를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오늘날까지 죄악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으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종교를 세워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 속에 자랑거리를 남기고자 한다면, 서러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기 위하여 `오, 아버지여! 그 서러움을 저에게 넘겨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고 계신 짐을 제가 대신 지고 가겠나이다'라고 기도하며 나서는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서러움과 통분 함과 곤고함을 모르면 망하게 됩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역사적인 전통을 알아서 수호하여야 할 끝날의 성도들이 이러한 책임감을 느낀다 할진데, 그는 하나님의 슬픔에 동참하여 남 모르는 눈물을 수없이 흘려야 합니다. 남 모르는 핍박을 받으며, 때로는 남 모르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변명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의 길을 걸으면서, 전인류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죄악을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이 민족 가운데 있다면 그들에게로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옮겨질 것이며 우주적인 사명도 그들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겠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인류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고, 노아의 슬픔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려야 되겠으며, 아담 때부터 아브라함과 이삭·야곱 ·모세·예수님까지의 4000년에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의 2000년을 합한 6000년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 위에서 한 아들딸을 찾아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아버지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 손길이 추하고, 그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의 형색은 남루할지라도 그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고 그 마음이 천심과 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세계가 동원되더라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천륜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아신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배반하는 이스라엘민족을 위하여 서러워하였고, 핍박하는 교단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십자가에 매다는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줄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