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집: 제물의 완성 1971년 09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8 Search Speeches

한국과 일본과 '국은 하나되어야

오늘날 구보끼가 일본에서 유명한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40대 젊은 사람으로서 일본 조야의 거두들이 일본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로 생각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것이 누구에 의해서 되었느냐? 여기 청파동에서부터 그렇게 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이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지금까지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다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승공연합의 닻은 어디에 내려야 하느냐 하면, 인도에 꽂혀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은 남진정책을 할 것입니다. 소련은 북방에서의 국경분쟁이 문제입니다. 소련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사상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한번 갈라졌다가 화합할 것입니다. 갈라졌다가 화합하려면 하나가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공은 앞으로 국경분쟁보다는 남진정책을 세워서 경제기반을 조성하려고 할 것입니다. 남진정책을 세워 가지고 무진장한 남방의 자원을 발굴하여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갖게 되면 중공이 소련과 백년전쟁을 한다고 해도 소련이 못 당할 것입니다. 소련이 그걸 알기 때문에 중공의 남진정책을 방지하기 위해서 함대를 인도양에 배치하고, 인도지나를 중심삼고 아시아의 안보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소련이 인도와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일본도 거기에 제까닥 걸려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그건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일본이 가야 할 방향 문제라든가 이런 등등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시해 가지고, 최고로 여기에 알맞은 사람들한테 줄을 달아서 지금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를 대해서는 내가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 기반 닦기에 더 바쁩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경제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상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사상을 내세워야 합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국가가 모르는 가운데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때는 이화여대 사건으로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온 때였습니다. '이 나라의 금후의 갈 길은 일본을 품지 않으면 안된다. 천운이 그 길을 걸어오기 때문에 일본을 품어야 된다'고 하면서 보냈습니다. 일본을 품는 데는, 아는 사람이 그 깃발을 꽂아야 되겠기 때문에 내가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위법인 줄 알면서도 보낸 것입니다. 현재는 이것이 법에 위배될지 모르지만, 금후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이 그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코 보냈던 것입니다.

그때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이 교회를 2백만 원을 빚을 내 가지고 사서 젊은 사람들을 보내 대청소를 하여 사흘만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 8월에 최봉춘이를 충청남도 갑사 뒷산으로 불러 가지고 일본 선교의 특명을 내렸습니다. '너는 현해탄을 건너야 된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준엄한 것이다' 이렇게 다짐시켜 가지고 밀선을 태워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1차에서 걸리고, 2차에서도 걸리고, 3차만에 간 것입니다. 3차에 갔어도 오오무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꾀병을 부린 것입니다. 사흘 동안 소금을 먹어 몸에서 열이 나니까,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휴식시간에 탈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망을 해 가지고 길을 닦아 놓은 것이 현재의 일본 통일교회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앞으로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과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딱 하나된다면, 그 나라의 백성을 중심삼고 미국 백성보다 강력한 신임을 받는 백성권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