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성교회 Page #339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한

한이 사무치고 사무쳤던 예수님이 몇살 때 집을 나간 줄 아십니까? 그는 요셉 가정에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일을 하면서도 요셉의 직계 아들딸 앞에 미움을 받았습니다. 명절 때가 되어도 새옷 한번 입어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입장에 있었습니까? 요셉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기르고는 있었지만, 예수님이 의붓자식이었기 때문에 싫증이 났던 것입니다. 명절이 되더라도 마음 놓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심정의 자리를 갖지 못한 서글픔과 억울함에, 예수님은 부모야 있든 말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살렘 성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제사장이 머물고 있는 성전 가까이에서 정성을 기울이기를 다했던 것입니다.

한 많았던 예수님,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고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요, 만민의 구세주로, 황태자로 오셨던 그 메시아에게 십자가가 웬말입니까?

오늘날 나는 통일교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나오면서, 그 누구보다 핍박을 당하고 이 민족 앞에 저주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통일교회를 이단이라며 핍박하고, 밟고, 천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뿌리는 밑으로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참인가, 누가 허위인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참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온갖 욕설을 다 들어왔기에 민족을 저주하고 교회를 저주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알았고 하나님의 서글픈 심정과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알았기 때문에 참고 나왔던 것입니다. 죽으라고 감옥에 몰아 넣는 다고 해서 쉽게 죽어 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통일의 용사들은 남아 있는 복귀의 노정을 가고 있습니다. 스승은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 태어났지만, 만약 이 스승이 미국에 태어났다면 이런 지긋지긋한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요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 중 어느 누가 밥 한 그릇을 주었어요? 어느 누가 옷 한 벌을 주었어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려던 예수님의 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 말입니다. 서글프고 원통했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면 비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어서 뭘 하자는 것이냐? 제자 중에서도 참된 제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용사들은 한 많았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이 소망하셨던 천국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참다운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참다운 가정이 되어야 하고, 참다운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개인과 가정을 찾아오셨지만 그 개인과 가정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또다시 세계를 향하여 가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으시니, 나도 가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험준하다고 마다할소냐, 그 길에 죽음이 있다고 마다할소냐, 슬픈 곡절이 있다 해서 마다할소냐!

나의 아버지가 가신 길을 나도 가야 되겠으니, 아버지가 어려우면 나도 어렵기를 바라고, 아버지가 슬프면 나도 슬프기를 바라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의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이 조그마한 삼천리 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이 민족 앞에 이색적인 운동을 만들어 가지고, 세계에 새로운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우리의 이념권내에 흡수되게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서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설 때마다 이 스승은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이 뜻이 정녕 아버지께서 세우신 뜻임을 알게 될 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분은 내 아버지요 내 사정이 되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세우신 전통을 상속받고 그 아버지의 역사와 심정에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 아버지가 고통받으면 나도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쉬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가운데는 안식의 한 날을 노래해 온 교단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인들은 쉬지 말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서도 기도하며 전도한 것처럼,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사망의 어둠이 휩쓰는 이 천지 가운데서도 전도를 해야 합니다. 지옥에 가더라도 그 속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