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아버지와 아들 1970년 02월 27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165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아"이 되려면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러분도 이적의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조각의 빵을 대해서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어떻게 인연을 맺게 할 것이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굶주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하는 동안에 사탄이 나타나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이 되게 하라'고 한 것은, 물질의 가치를 얼마나 아느냐, 네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아느냐, 너를 대하는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의 가치가 얼마나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물질도 초월해야 하고 자기도 초월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인 모든 요건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복귀의 원칙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예수와의 인연이 맺어졌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리는 배고파 굶주릴 때에 떡을 요구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때의 욕망을 넘어선 자리라는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던 당시에 애탔던 그 마음을 넘어선 자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신경이 곤두서 가지고, 온 몸과 마음이 거기에 견제를 받기 때문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심각한 자리에서 40일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빵 한 조각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할 것인가? 여러분들도 금식해 보았으면 알겠지요?

그러니 사탄이 이러한 외적인 모든 환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들의 특권으로서 무한한 가치와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느냐' 할 때, 죽음길 망할 길도 응당히 가야 할 자기 앞에 있어서 빵이 무엇이며 자기 자신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떻게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떻게 하라` 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하는 그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것이 시험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자신의 가치와 물질에 대한 가치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이냐?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에 있는 자기 실체와 물질을 놓고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굶주림 앞에 돈 십 원, 빵 한 개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빵 하나를 놓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것은 뭐냐면, `아버지께서 복귀의 도상에서 인류를 찾아 나오시기에 얼마나 얼마나 서러우셨사옵니까? 그 물질이 제물의 입장에 있사오니 그것을 제가 먹고 제가 대신 제물된 입장에서 제 실체를 바치니 이 몸뚱이를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물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인간은 아버지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오니 제가 이렇게 물질을 좋아하듯이 아버님도 그렇게 제 몸뚱이를 좋아하시옵소서. 잘 자라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힘의 원천이 되어 가지고 그 모든 소망을 성취하는 데 원동력이 되기 위해 저 자신을 몽땅 바쳐 드려야겠사오니 그럴 수 있게 하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굶주릴 때에 빵을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늘이 나를 그리워할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서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주시고자 하셨지만, 그들이 타락함으로서 받지 못했던 그 사랑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출발하게 될 때, 비로소 복귀의 사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요, 고빗길입니다. 내가 배고플 때에 빵을 그리워하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나를 그리워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는 죄인이 아니었는가? 그렇지만 자식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이 불효자식을 대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는가? 아버지의 그 아픈 마음을 하염없는 눈물로 적셔 드리면서 이제 다시는 그런 아들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아버지의 아픔은 없어질 것입니다.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상을 잊어버릴 수 있는 동기를 만들지 않고는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다시 맺고자 하는 그 소망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