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집: 고향복귀와 일족해방 1988년 01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6 Search Speeches

하늘은 가인을 구원하기 위해 제일 가까운 아벨을 희생시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선생님한테 신세지게 돼 있어요, 선생님에게 신세를 지워야 돼요? 나라를 바치고 세계를 바쳐야 기독교 전통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걸 못 하니, 못난 병신 자식을 뒀으니 선생님이 대신 역사한 거 아니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임자가 무얼 들고 와서 이래 주소, 저래 주소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똑바로 알아야 됩니다.

유종영이! 「예」 뭐 이제는 차 안 돼? 「아닙니다. 아버님 뜻대로 하십시오」 사리를 올바로 알고 판단을 해야 돼요. 그런 혼란이 벌어지게 되면 통일교회 길이 어긋나가는 것입니다. 협회장! 「예」 협회장은 그걸 알아야 돼. '이런 모든 처리 방법을 알고 하늘이 이렇고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이것을 내가 책임지겠소' 할 수 있기 전에는 행동을 못 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를 만 6년 동안 버리고 이북에 간 것을 알아요? 「예」 그 기간에 열녀가 돼 가지고 돌아오실 낭군을 기다리며 절대복종을 했으면 얼마나 복받았겠어요? 내가 우리 성진이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성진이를 7살 때까지 업고 다니며 길렀어요. 어느 왕자도 그렇게는 기를 수 없을 거예요. 그건 또 그래야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랬지, 하늘이 역사하니까. 업고 길렀다구요. 성진이는 아버지를 두 번밖에 못 봤어요. 한 서너 번 봤나? 그런데 보니까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반대할 것 있으면 전화로 연락하고 와서 연락하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가 몇 번을 그러지 말라 그러니까, 그 어머니를 버리고 보따리 싸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온 거예요. 그렇게 찾아온 그 아들이 얼마나 고마운 거예요, 세상으로 보면?

지금까지 사랑의 품에서 고이, 마음대로 먹고 자고 행복하게 자라던 그 아들이 아버지라고 찾아왔는데, 내가 아버지라고 어디 한 번 데리고 잤어요? 손목 한 번 안 잡아줬어요. 절간으로 보내고 원필이 집에 맡기고 별의별 짓을 다 하지 않았어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 거 왜 그래야 돼요? 원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복귀노정에서 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제일 가까운 아벨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서도 그렇고, 형제들 대해서도 그랬고 자식, 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보라구요. 여기 문장로도 1973년 이전에는 못 오게 했습니다. 형님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못 찾아오게 했어요. 1973년이 지나 종족권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때가 됐으니 내가 불러들인 것입니다.

문씨 종친회도 보면 말이예요, 문씨 40만 명이 날 종장으로 모셨어요. 그렇게 모셔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일족이 멸망하겠으니 영계의 조상들이 협력해서 내가 문씨 종장이 된 것입니다. 문씨 40만이 종장이라고 해 가지고 전부 따라가려고 합니다. 거기에 기성교회 패들이 있어서 끈적끈적하지만 그건 다 부는 바람이예요, 바람.

이렇게 종족복귀권이 이미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민족복귀시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다 들어맞습니다. 40만 명으로 40수지요. 40년간 40수를 찾은 것입니다. 이게 다 맞다구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민족복귀의 운세를 몰아 가지고 이 나라에 착륙할 시대에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기간에 이북 5도 사람들을 대표해서 누구 누구를 미는 것보다도 북한 사람 대표로서 문총재를 밀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했으면 날 밀었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할 수 없으니…. 이북 5도는 다 문총재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