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집: 하나의 세계를 이루자 1964년 03월 23일, 한국 대구교회 Page #68 Search Speeches

이 시대를 구할 수 있" 사람"은 젊은이"

이제는 한국은 물론 세계가 우리 편에…. 내가 젊었을 때는 꿈이 많았어요. 이 조그마한, 미국의 한 주의 몇분의 일밖에 안 되는 삼천리 반도에 딱 감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여기에다 큰 기지를 잡아서 한번 날아 보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예언했던 것들이 지금 다 들어맞는단 말이예요.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 말을 좀 믿을 만큼 됐어요. 믿을 만큼 돼 있지요? 「예」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추방할까봐 걱정이예요. 그래야 일이 되는 거예요. 과거에 반대할 때는 들어오면 이거 또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이거 따라오면 어떡할까 걱정이예요. 따라오는 게 걱정이라구요.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만나겠다고 야단이예요. (웃음) 천 사람 만 사람 어떻게 다 만나겠어요, 선생님 일도 많은데? 그렇다고 안 만나주면 입이 이렇게 나와 가지고 말이예요, 선생님은 뭐….(웃음) 여기에 온 양반도 선생님을 찾아왔지만, 앞으로는 내가 아주 문전에서 내쫓을지 모르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웃음)

나 물 좀 줘요. 선생님이 왜 이런 우스운 얘기를 하느냐? 방은 좁은데 앉아 있으려니 오금이고 어디고 안 아픈 데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웃음으로써…. 또, 졸음이 올 때는 이러잖아요? (몸짓하심. 웃음) 그러니 부작용이 있잖아요. 그러니 웃는 바람에 그걸 잊어버리자는 거예요. 내 할 도리를 하는 거예요. 점잖게 얘기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렇지만 할 수 없어요. 이렇게 해야 청중을 이끌어 나가니 할 수 없는 거라구요.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선생님은 거룩하게 얘기할 줄 알았겠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다 졸 거라구요. 나 물 좀 주소. 점심도 안 주려고 하면서 물도 안 줄래요? (웃음)

여기 미국의 김영운 선교사가 왔구만. 김영운이가 왔지만, 김선생이라고 못 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좋아하거든요. 미국 사람도 교수라고 하고 어머니라고 하고 뭐 이러지만, 내가 반말해도 좋아한다 이 말이예요. 내가 '하, 오십니까?' 하면 그저 눈을 내리 깔고 이런다 이거예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3년노정을 걸었지요? 3년노정 걸을 때, 내가 저 양반한테 미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일본에 있는 패들한테 전도하라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우리들을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자 하고 두고봤다구요.

보리밥을 먹고, 걸어다니고, 하루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으니 미국놈들도 별수 있어요? (웃음) 알고 보니 큰일났거든요. 잘못 걸렸단 말이예요. 코를 꿰었어요. 코가 걸렸으니 끌면 끌려가지 별수 없다 이 말이예요. 코 잘못 걸렸다고 그러지요? 한국 말이 재미있다구요. 그 코가 잘못 걸렸다 그 말이예요. (웃음) 이것이 맨 처음 간 사람이 끌고 가는 줄을 딱 만들어 놓았으니 끌려오는 사람들은 끌려오지 별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금식을 시작하는 데 말이예요, 일주일에 사흘씩 금식하는 것을 일주일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고 이래 가지고 사흘 금식했다는 조건을 세우면서 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절대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차 아니면 다니는 것을 모르던 녀석들이 터벅터벅 걷고 말이예요, 독일 녀석도 그렇고, 미국 녀석도 그래요. 이 양반도 한번 걸어야 돼요. (웃음)

선생님은 참 잘 보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전부 다 솔솔이 패거든요. 눈을 보면 반짝반짝하고 말이예요. 나이 많은 양반들 미안합니다. 왜 미안하냐 하면, 인사는 고맙게 해놓고 나이 많은 사람들 듣기에 섭섭한 얘기를 하면 '저 녀석 저거 어른도 몰라본다' 하고 욕하면 안 되거든요. 나이 많은 사람들 미안합니다. 솔솔이 패가 필요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괜찮아요? (웃음) 이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은이들이예요.

내가 지금 통일교회 지도자로서 생각하는 것은 '40대 이상인 사람은 필요치 않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더러 나가라는 게 아니예요.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오기도 힘들었는데 나가기는 더 힘든 것 아니예요? (웃음) 오늘날 한국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뭐 목사, 장로, 집사 중에 4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합니다. '통일교회 이단이야, 최고 이단' 하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암만 큰소리 해봐라. 당신들은 필요치 않지만 너희 아들딸은 내가 필요하다. 나이 많은 당신들은 큰소리하지만 당신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먼저 죽을 것이다. 당신들의 아들딸들을 내가 수습할 것이다' 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죽을 걱정은 하지 말라구요. 그들은, 일세들은 배반자요 반대자요, 혹은 원수의 입장에 있었지만 이세만은 틀림없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내가 계산을 잡아 보니 놀랍게도 통일교회 교인 전체 평균 나이가 23세 미만이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기성교인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니 47세 이상이예요. 그러니까 암만 욕을 해봐라 이거예요. 욕하다가 배고파 밥먹으러 들어갈 때는 우리 시간이다! (웃음) 우리는 밤잠을 안 자고 있다가 그들이 새벽녘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우리 시간이라는 겁니다. (웃음) 우리는 그런 패들이예요. 그런 패인가요, 아닌가요? 「그런 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을 잘 듣거든요, 무슨 약을 먹였는지 모르지만. 약은 무슨 약이예요? 또, 무슨 요술을 해서 그러는지 몰라요. 하여튼 요술은 요술이지요. 인간 요술이 아니라 하늘 요술이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걸리면 잘못 걸렸다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뭐 여기 있는 문선생이 수단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예요. 그 내용이 진리이기 때문이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약을 먹여 가지고 돈을 벌게 했지요? (웃음) 이 양복이 지금 몇 년 됐느냐 하면 7년 됐어요. 그때 양복이 이렇게 생겼지요? '문선생은 어저께 해 입은 양복이냐' 할지 모르지만 7년째 입는다 이 말이예요. 깨끗이 입었지요? 내가 양복을 갈아입지를 않아요. 양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있지만 안 갈아입어요. 이 사람은 이 옷을 벗어 버리고 딱 적당한 때에 적당한 옷을 입고…. 옷을 잘 입을 줄도 알아요. 그렇지만 차양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고 시장거리에 나서게 되면 넝마 장수 이상 간다구요. 때에 따라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다'라고 하는 것이예요. 나 이번에 차타고 가면서는 절대 그런 패들 보고 싶지 않아요. 차타고 가는데 뭐 통일교회 패들 수십 명이 나와 가지고 선생님 오신다고…. 여러분은 이제 선생님이 여기 올 때 대구역에도 나오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웃음) 내가 옛날 학창 시절에 일본에 있다가 집에 올 때는 집에 전보도 한장 안 띄우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온다고 하면 집에서 역까지 한 20리가 되는데 버선발로 혼자 나온다구요. 그게 멋진 거예요. 고향집을 찾아오는데 가족과 더불어? 그게 아니예요. 그게 참 귀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마중 안 나와도 괜찮아요. 그런다고 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예요. 또 어디든지 가면, 할아버지들 있는 곳에 가면 할아버지와 어울릴 줄도 알아요. '한국 노래 중에는 무슨 노래가 제일 좋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거야 아리랑이 제일 좋지' 하면서….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