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집: 뜻과 감사 1978년 02월 12일, 미국 맨하탄센터 Page #256 Search Speeches

잘못된 인간의 마음을 절대적인 사'을 향해 "로잡아야

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이상의 길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요전에 말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도 아니다. 이거예요. 그걸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권이다 이거예요. 사랑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사람인 우리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 인간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할 거 아니냐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편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이 인간과 하나되고 인간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려면 어떠한 자리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결국은 지금 결론 지은 이상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이상적이요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고생을 해 가지고 끝에 가서 사랑하겠다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구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됐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인간이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타락입니다.

몸과 마음이 두 가지 음차와 같이 되었기 때문에 전부 다 쭈그러졌어요. 서로가 쭈그러졌다 이거예요. 꼬부라졌어요. 그러면 타락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된 것이냐? 그건 그럴 수 없어요. 누구에게 잘못이 있어요? 우리, 우리에게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을 뜯어고쳐야 되겠다구요.

그러면 무엇에서부터 고쳐야 되느냐? 한꺼번에 전부 다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를 표준으로 세워서 고쳐 놓고, 고쳐 나가야 됩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가까운 것부터 고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에 마음이 하늘 앞에 가까우냐, 몸이 하늘 앞에 가까우냐?「마음이요」 그게 뭐냐? 마음이예요. 그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아라 이거예요. 오늘 여기에 앉은 여러분들은 생각이 전부 다르다구요. 별의별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으로 전부 다 갈라져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세계 인류의 마음의 방향을 무엇을 향해서 바로잡아야 되느냐? '절대적인 사랑에 화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바로잡아라' 이런 경고를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소유하고 향하는 그 곳은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곳이요, 마음이 가야 할 절대적인 방향입니다. 이 결정은 어떤 무엇도 동요할 수 없어요.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개인적인 환경을 넘고, 가정적인 환경을 넘고, 종족·민족·국가·세계를 넘어 영원한 하늘나라에 달려가더라도, 여기에 거침이 없고, 지장되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럴 수 있는 스스로의 마음의 목적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요건을 우리 인간 앞에 제시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혼란된 세상에 살고 있어요.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인류들 가운데, 그래도 통일교회 교인들은 방향을 갖고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지금까지의 그 목적과 방향이 뭐예요? 그게 뭐예요? '아, 오늘 1978년 2월 12일, 부모님의 생일이니 그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요?「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이런 축하의 날도 필요하지만, 그날이 그런 방향에 대해 자극을 가하지 못하고 보탬을 주지 못한다면 이건 다 필요 없는 거예요. 그래요?「예」 이런 날들이 오게 되면 아이구 고달파 죽겠고, 오자마자 잘 자리도 불편해서 잠도 못 자고, 먹는 것도 불편하고, 전부 다 고달픈데, 그게 사랑의 방향과 사랑의 자극을 촉진할 수 있을 게 뭐예요?「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거예요, 왜?

이런 모험이라든가 생활의 모든 변화되는 일이나 과제 전부가 하나의 고차적인 사랑의 세계를 이루고 사랑의 인격을 완성하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의 자극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왜 그래요, 왜? 고생이 극심한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그것은 도리어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닌 위대한 것으로 화하기 때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생스럽고 슬픈 일이 나쁜 것이냐 이거예요. 「나쁘지 않습니다」 왜 나쁘지 않으냐 이거예요. 보라구요. 참된 것을 찾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보다도 수고 안 한 사람이 그 가치를 더 아는 것이다. 이 말이 맞아요?「맞지 않습니다」 참을 찾기 위해서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하고, 비참하게 죽을 고비를 거쳐 가지고 참을 찾았을 때 그 가치의 내용과 그 폭이라는 것은 그 고생에 비례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고생 안 한 사람이 그런 가치를 얻게 되면 '그저 그렇고 그렇구만' 하지만, 고생한 사람 같으면 그저 '허-' 입을 벌리고, 더 고생한 사람은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더 고생한 사람은 '아-' 침을 흘리고…. 여러분이 영화를 보더라도 스릴이 있는 영화를 보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그저 부딪쳐서 당장에 옥살박살되어 넘어가 별의별…. (웃으심) 마찬가지라구요.